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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05. 2018

비 오는 새벽, 잠 못 들던 나날

그 집에 사는 내내 밤이면 도로 위에 누워있었다

예전에 살던 신혼집에서는 창문을 열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복도식 아파트의 맨 끝집,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 붙여진 사거리를 면한 아파트의 10층이었다. 


침실에는 침대와 화장대가 겨우 들어가고, 문을 여닫을 정도의 여분을 빼고는 구조를 손볼 수 없었다. 침대의 머리맡에는 얄팍한 이중창이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됐는지 여닫을 때마다 나무 창틀의 부스러기가 수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얼마 전 비오는 날 기차를 타고 차장 밖을 보고 있었다. 안에서 밖을 보니 밖의 건물과 집들이 오히려 사연 있어 보였다.


추운 계절을 넘어 봄,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켜는 여름을 넘어 가을이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고 자야했다. 머리맡 창문을 열고 잘 때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주 피곤한 나머지 슬며시 잠들었다가도 어디선가 쌩-하니 굉음을 내며 달리는 차량에 한 번씩 깨곤 했다. 비라도 오면 그 굉음이 배가 됐다. 그러고 보면 그 집에서 살던 봄, 가을엔 단잠을 잔 경험이 손에 꼽는다.  


어쩌다 한 번씩 쌩 하니 달리는 차가 나타나는 거라면 별 문제 아니었으련만,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대형 트럭이 오고 가며 굉음을 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신혼집이 면한 사거리는 내가 살던 광명시와 다른 도시들을 잇는 고속도로의 경계쯤이었다. 


늦은 밤 서둘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급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더 늦은 밤 혹은 새벽에 반드시 달려야만 하는 급한 사연을 가진 자동차, 동 트기 전 일을 시작해야 하루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속도를 가진 대형 트럭. 그들이 쉴 틈 없이 달리는 동안 내 잠은 저 멀리 달아났고 뜬 눈으로 누워 자동차 속 앉아있는 그들을 생각했다. 


‘이미 늦은 밤이니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 저리 달리는 거겠지. 운전자는 야근이라도 한 걸까?’

‘이 야심한 새벽에 저리 달리는 걸 보면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거야. 뭐, 누가 아프다던가? 음, 얼마나 급한 사연일까?’

‘급한 사정으로 차키를 들고 종종거리며 나와 운전하는 이는 어떤 기분일까?’

‘아, 설마 저 중에 음주운전자가 섞여있는 건 아니겠지?’

‘이 시간에 일을 시작하려면 아침 식사는 몇 시에 하는 걸까? 겨울에 일하려면 너무 힘들겠다.’

‘이른 새벽에 일을 시작하는 운전자는 차 안에서 일출도 일몰도 보는 걸까? 자주 보면 감흥이 덜하겠지?’


오만 가지 상상을 하는 동안 이미 나는 도로 위에 이불을 펴고 누운 신세였다. 차들이 오가는 8차선 도로에 드러누워 자동차 속에 앉은 사람들의 사연을 상상하며 밤을 새운 날이 대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비에 젖은 거리에서 만난 고양이들


지난 새벽 비가 시작된 모양이다. 출근 준비하는 남편의 알람에 깨서 창문을 열어보니 젖은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마찰음이 씩씩하다. 지금 사는 집도 도로를 면하고는 있지만, 밤에는 차량이 거의 없어 조용하다가 이른 아침에야 기척이 들린다. 덕분에 도로에 누워 운전자를 상상하는 나날이 사라졌다. 


창밖을 보니 연분홍 우산을 쓴 이가 지나간다. 비에 젖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속 운전자들의 안부가, 그들의 사연이 오랜만에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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