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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03. 2019

우리는 친우가 될 수 있을까요

나의 은근한 독자는 시어머니다.

내게는 은근한 독자가 한 분 계시다. 그야말로 ‘은근’하다. 대놓고 댓글을 작성하거나 리뷰를 남기진 못하지만 늘 지켜보고 있다. 이 사실을 작년에 알았다만,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은근한 독자는 시어머니다. 처음 에세이를 세상에 공개한 게 결혼생활 이야기다 보니 시가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었다. 내가 겪은 것을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느낀 대로 툭툭 꺼내놓은 이야기들이었다. 거짓을 쓰거나 억지를 부린 글은 없지만 부러 시가에 알릴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결혼생활 에세이인데 알려드려 봤자 긁어 부스럼이겠지.’


자발적으로 논란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내 글을 보신다 해서 당당하지 못할 일은 없지만, 가족들 사이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도마 위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심 짐작하는 바도 있었다.

‘어차피 관심사는 나보다 아들이 아닐까?’


정말이지 시부모의 관심사는 내가 아니라 아들이 아닐까? 며느리는 아들이 만나 짝을 짓겠다고 선언한 대상이니 직접 낳아 키운 자식인 아들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낳은 자식에 더욱 관심이 가는 건 시가든 친정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글을 쓰든, 무엇을 하든 시부모의 관심 밖일 거라 생각했다. 관심도 없는 분들께 굳이 쑥스러운 내 소식과 일과를 전할 생각에 닿지 않았다.


2년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며 운이 좋아 상도 받고, 내 글을 아껴주는 독자들이 생겨 행복하게 보냈다. 그런데 브런치 앱이 낯선 친구들의 요청으로 메신저 프로필에 글을 공유했던 게 화근이었다. 며느리에게 관심이 없으니 메신저 상태 메시지나 사진을 볼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사이 내 글은 시어머니와 시이모들께 널리 널리 퍼진 상태였다.


 해 겨울의 어느 날, 시어머니는 내게 서운한 내색을 보이셨다.

“네 글 다 봤어. 나도 보고 이모들도 다 봤어. 다들 나한테 네 글 봤냐고 조심스럽게 묻더라.”


느낀 대로 써 내려간 글들이었지만,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발언과 행동이 글에 속속 드러났으니 마음이 상하신 것이다. 내심 서운하지만 글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지 않은 데다 각자의 입장이 있으니 크게 나무라진 못 하셨다. 다만 며느리가 느낀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시어머니는 조금 여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때 큰소리를 낸 건 아닌데……. 그리고 우리 큰아들 어릴 때 그 일은 좀 오해가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내 모든 글과 댓글을 읽고 본인의 입장을 전하셨다. 그리고 억울했던 감정을 하나씩 꺼내 놓으셨다. 누군가 뾰족한 댓글을 남긴 것에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도 털어놓으셨다.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까지 마음 쓰신 데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에세이 쓰기를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 저는 이게 직업이고 앞으로 계속 에세이를 쓸 거예요. 에세이에서는 제 실제 이야기가 드러나는 게 많아서 가정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어요. 그러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면 제 글을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 그러니.”

“제 글이랑 댓글 때문에 속상하신 것보단 안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죠. 저는 댓글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댓글 때문에 어머니도 지금 상처 받으시잖아요.”

“그럼 에세이를 쓰지 마.

“네?”

“그냥 소설을 쓰면 안 되니?

죄스러웠던 마음이 소설을 권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뚝 끊기고 말았지만, 시어머니가 내 글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그 이후 글을 쓰고 올리는 과정에서 시어머니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눈치 보며 글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타인에게 상처되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사이에 소원해질 계기가 있어 연락이 뜸한 채 시간이 흘렀다.


예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 부부가 결혼을 결정했을 때 시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어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나의 시부모님은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분들이셨다. 우리 부부는 그 기대에 부응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우리를 독립적인 존재로 봐주길 바랐다.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좋았던 날보다 나쁜 날이 더 많았던 5년의 결혼생활 내내 나는 무심하다 못해 냉랭한 며느리였고, 예의를 지키는 마지노선에 간신히 걸쳐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뜸한 채로 시간을 보내던 차에 연락을 먼저 한쪽은 시어머니였다. 지난해 여름, 나를 향한 원망이 가득 담긴 용건이었지만, 어쨌든 메시지의 끄트머리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출간 축하한다. 늘 관심 갖고 보고 있다.”


마지막 말에 아차, 싶었다. 당연히 내게 관심이 없을 거란 짐작으로 출간 소식도 전하지 않은 터였다. 그런 상황에 마지막 말은 며느리보다 아들에 관심 있을 거란 짐작을 조금 삭혔다. 물론 들인 자식이 낳은 자식을 넘을 수야 없겠지만, 시어머니의 소중한 두 아들 다음에 내 자리도 얼마쯤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보통의 직장을 다니는 며느리가 아닌 공개적으로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며느리를 대하는 게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봤다. 시어머니께 ‘글 쓰는 며느리’는 어떤 존재일까. 내가 예전처럼 무난하게 직장에 다니고, 어딘가의 소속을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존재였다면 시어머니는 조금 덜 당황스럽고 덜 서운했을까.  

오랜만에 메시지를 주고받은 다음 날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을 앞둔 시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시집올 때는 그리 반대하시더니 시동생 결혼에는 순순히 나오시기에 무의식 중에 쏘아붙이고 말았다.

“어머니, 저는 그렇게 반대하시더니 그 아가씨는 왜 반대 안 하세요? 되게 맘에 드시나 봐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너희들 반대했더니 좋을 것도 없고…….”


어쩌다 한 번씩 속내를 쏘아붙이는 며느리 덕에 시어머니에게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당황이 묻어나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다 그저 웃고 말았다. 이럴 때가 아니면 딱히 모진 소리도 못 하는 내 성격을 시어머니도 알고 넘겨주셨을 테다.


집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간혹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모녀처럼 지내는 집도 있다. 나의 외할머니와 큰 외숙모가 그러셨다. 추운 겨울날, 길에서 기다릴 일이 있어 잠시 서 있을 때 외할머니를 등 뒤에서 꼭 끌어안고는 “어머니 추우시죠?” 하시던 외숙모였다. 내게 “너희 큰외숙모만한 사람이 없다.”라고 은근히 칭찬하던 외할머니의 말씀도 기억한다.


그렇게 살뜰히 위하는 고부는 못 되더라도 원수처럼 지내지 않는 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가까이 지낼 친우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누군가에 소속된 사람이 아닌 개별의 사람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고귀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은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다면, 기대하고 바라는 티끌 없이 수수한 관계로 지낼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도 이 글을 읽고 계실 나의 시어머니,

우리는 친우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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