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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20. 2019

배우자의 마음

배우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지낼지 우리에겐 상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 눈물 날 것 같아!”

잘 차려준 밥상 앞에서 남편이 한 말이다. 

“어? 왜? 울고 싶은 일 있었어?”

“아니, 지금 너무 좋아서.”

잠시 덜컹했던 마음이 다시 잠잠하게 내려앉는다. 

“애기같이 그게 무슨 소리야. 놀랐잖아.”

“그냥 이렇게 여보가 맛있는 거 차려주고, 나 퇴근 기다려주는 게 너무 좋아서.”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날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0시 30분경이었다. 남편은 몇 개월간 출장이 잡혔는데, 주말마다 집에 오긴 했어도 일상에 대한 갈증이 상당했을 것이다. 


출장 간 기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끼의 식사와 커피까지 살뜰하게 제공되는 곳이었다. 한식, 중식, 양식, 분식 등으로 나뉘어 매일 새로운 메뉴가 제시되고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는 사내식당이 있다고 들었다. 설마 회사의 음식이 형편없어서 나온 반응은 아닐 것이다. 


남편은 그 다채로운 회사 식당의 메뉴가 집에서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아내가 차려주는 밥에 댈 것이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식판에 정 없이 담아먹는 밥을 싫어하는 남편은 평일 내내 집밥을 비롯한 집의 모든 것을 그리워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 7시경 출발했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거리가 있어서인지 늦은 밤이 돼서야 남편은 집에 도착했다. 평일 내내 그리워했을 집밥, 이왕이면 남편 취향에 맞게 차려주고 싶었다. 그렇다 해서 요란한 메뉴를 준비한 건 아니다. 양식을 좋아하는 남편이니 파스타를 준비했다. 


링귀네를 삶으면서 옆의 프라이팬에 고추기름을 만들었다. 마늘과 버섯 그리고 해산물을 고추기름에 볶은 다음 면수와 삶아둔 링귀네를 넣었다. 여기에 고춧가루와 굴소스, 간장 등을 적당히 넣어 사천식 해물 파스타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피클을 접시에 담고, 와인을 곁들일 생각이니 간단한 과일을 놓기로 했다. 역시 남편이 좋아하는 체리를 꺼내 삭삭 씻어 담았다. 


요리를 마칠 때쯤 남편이 식탁에 다가와 앉았다. 그래 놓고선 파스타 한 입을 먹더니 저렇게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을 얼기설기 드러내는 것이다. 

“대단하게 차린 것도 없는데 뭘. 우리 여보가 정말 집에 오고 싶어 했구나.”

“응. 거기서 밥 잘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내 집에 돌아와서 여보가 맛있는 것 해주니까 너무 좋아.”

식사를 하는 남편의 표정은 정말 편안해 보였다. 아무리 식사가 잘 나오고, 숙소가 좋다한들 집에서 먹는 한 끼가 더 간절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마늘빵도 구워놓고, 디저트도 준비해둘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쩌면 배우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는 방법은 참 단순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을 남편은 무엇을 먹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준비한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달라붙어 지낼 수 없으니 내가 절대 확인할 수 없는 그의 업무 시간, 퇴근 후 숙소로 걸어가는 길목, 금요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설렘의 발걸음, 한시라도 빨리 오고 싶어 기차 시간을 체크했을 눈길.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의 동선과 행동을 머릿속에서 따라다닌다. 그 모든 것을 상상하며 그 기대에 부응할 따뜻함을 주고 싶었다. 


그가 좋아할 메뉴를 준비하며 평소 피하고 싶던 해산물 손질을 했다. 들어오자마자 너저분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집안 정리를 말끔해해 놨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주방으로 다가와 눈에 보이는 것을 꼭 하나 집어먹는 그의 습성을 생각해 과일을 미리 식탁 위에 담아둔 것 정도다. 


그러니 배우자의 마음을 알아채는 길은 어렵지 않다. 확인할 수 없는 상대의 시간을 상상하고, 그 시간을 보냈을 배우자라면 지금 무엇을 원할지 답을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남편을 위하 한 것은 단순한 요리 준비와 집 정리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시간과 행동을 상상하며 ‘내가 지금 남편이라면’이라는 질문을 거듭한 게 배우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쉽고 빠른 길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저녁식사를 두고 눈물이 날 것 같다며 기뻐하는 남편을 보니 내 진심이 전해진 듯하여 흐뭇했다. 


주변에서 혹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 속 부부 중에는 배우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피곤한 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남편은 아내가 왜 토라지고 화를 내는지 알 길이 없다. 나름 맞춰주고 배려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아내는 더 많이 요구하는 것 같아 미워질 지경이다. 아내는 남편이 왜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잘못을 반복하며 눈치 없는 짓만 골라하는지 속이 터질 것 같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 수십 년째 대화를 단절하고 사는 노년의 부부를 우리는 숱하게 보지 않았던가. 


덧붙이자면 명절이 지나 아내에게 고가의 선물을 사준다던가,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기사가 매번 나오는 것도 배우자의 마음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명절에 시가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에게 고가의 선물로 입막음을 하는 것은 배우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배우자가 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배우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이 있는지 경청만 해도 명품백이며 고가의 가전제품을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명절에 아내가 화가 났던 건 억울하게 잡일을 도맡아 할 때 당연한 이치라며 뭉개고 넘어간 남편의 뻔뻔함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본가에 아내를 데려다 놓고 일을 시키면서 선심을 베풀 듯 “나도 도와줄게.”와 같은 말을 했다면 비싼 가방 대신 아내 마음에 응어리가 굳어갔을 그 과정을 상상해봐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 배우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마음을 품고 지낼지 우리에겐 상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을 준비하며 함께 덮을 이불을 고를 때 그 달뜬 마음을 나는 여전히 잊을 수 없다.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는 하루의 고단을 씻어내고자 눈을 붙이는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이를 곁에 둔다는 의미다. 신뢰할 수 없고 의심이 가는 이를 눈 감고 잠드는 시간에 곁에 두고 싶을 사람은 없다. 결혼과 동시에 죽는 날까지 곁에서 자도 될 만큼 상대를 믿는다며 이불 반쪽을 내주는 사이다. 


그랬던 배우자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오늘은 차분히 상대의 하루를 상상해보자. 차마 하루 종일 따라다닐 수 없는 배우자의 일상을 상상하며, 상대가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이 듣고 싶을지 떠올려본다. 오늘의 날씨와 상대의 취향에 맞는 저녁식사는 무엇이 좋을지 모색해보고, 상대에겐 버겁지만 내가 대신 함으로써 한결 가벼워질 일은 무엇이 있을지도 고민해본다. 


그렇게 상상만 해도 배우자의 마음은 활짝 열린다. 그저 과일 하나 미리 씻어놨다고, 늦은 시간 식사를 기다려주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며 기뻐하는 남편에게 배운 배우자의 마음 읽는 기술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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