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주로 자유 여행을 다닌다. 여행지에서의 동선을 대강 정한 다음 근처에 호텔과 교통편을 예약하면 준비는 거의 끝이다. 특이한 식문화가 있지 않은 한 식당도 현지 상황에 맞춰 적당한 곳에 들어간다. 내 관절이 워낙 부실한 탓에 중간중간 카페에서 휴식도 취해야 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일정을 바꿔 오래 머무를 때도 있다. 정확한 틀을 짜서 움직이기보다는 쉬엄쉬엄 발걸음을 떼는 스타일이다. ‘그곳에 가면 어디를 꼭 방문해야 한다.’가 없다 보니 전혀 생각지 못한 의외의 지역을 둘러보게 되고, 관광지의 달뜬 피로에서 벗어나 현지인들의 보통의 일상을 엿보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모든 시간과 선택을 마음이 동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여행이 우리에게 잘 맞는다.
자유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와는 달리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20대 때 내내 자유 여행을 다녔던 친구는 엄마를 모시고 패키지여행으로 스페인을 다녀왔다. 패키지는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룹을 지어 움직여야 하는데 괜찮았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단박에 대답했다.
“그런 거 절대 없어. 패키지가 세상 제일 편해!”
스페인에 다녀온 친구는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줄줄 나열했다. 일단 귀찮은 게 없다고 했다. 가이드만 놓치지 않고 따라다니면 주요 관광지를 두루 볼 수 있단다. 식당 예약을 하거나 맛집을 알아보느라 일일이 검색할 필요가 없고, 스케줄 관리도 가이드가 알아서 하니 관광객은 구경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물론 원치 않는 쇼핑센터에 들르거나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지만 그건 패키지여행의 편리함에 비하면 아주 약소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이 먹으면서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친구는 앞으로도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패키지여행을 다시 이용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신혼여행은 패키지로 다녀온 터라 그 편리함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신혼여행지에서 가이드가 인솔하는 차량에 탄 채로 한숨 자고 나면 멋진 장소에 도착해 있고, 괜찮은 식당으로 안내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가이드는 우리가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했고, 어느 건물과 관광지의 화장실이 깨끗한지까지 세세하게 알려줘 여행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신혼여행지는 자유 여행으로 가기엔 치안과 교통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라 패키지를 이용한 이유도 있지만, 어쨌든 한번 겪어보니 장점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여행 스타일을 선택한다면 자유 여행 쪽이 조금 더 우리 부부에게 편안하게 맞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행을 떠날 때 패키지보다 자유 여행을 선택하고 교통편과 호텔을 고르는 과정은 어쩌면 삶의 진로를 정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많은 이들이 좋다고 말하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하면 편안함이 보장될 것이다. 돌발 상황 없는 무난한 여행, 내가 경험한 것처럼 더러운 화장실을 피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갖춘 패키지여행이라면 말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즐거움을 누리는 건 괜찮은 삶이다. 먼저 살아본 이른바 ‘인생 선배’의 리뷰가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다수가 선택한 것은 모험을 피하기에 알맞다. 식당에 가서 도무지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 베스트 메뉴를 골라야 하는 것처럼 편안한 선택지다.
30대 초반에 결혼한 내가 아이 두 명쯤 낳고 사는 모습은 패키지여행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무난하게, 고민 없이 주어진 대로 살기. 가이드의 말에 순순히 따라 움직이듯 다들 무난하게 사는 게 좋다고 하니까. 아이가 한 명이면 외롭다고 하니 한 명 더 낳은 4인 가족의 형태로 살며 때에 따라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삶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선택하는 패키지여행과 어딘지 닮은 구석이 있다.
자유 여행은 홀가분하지만 무난하지만은 않은 나만의 여행이다. 스스로 계획하고 내 몸 하나 뉠 곳을 찾고, 식사 역시 남이 정해준 것을 먹지 않는다. 마음에 쏙 드는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면 정해둔 코스를 깨끗이 비워내고 머무르면 그만이다. 정해진 하루 세 번 식사 외에 술을 실컷 마신다고 한들 문제가 될 일도 없다. 괜히 자유 여행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가 몇 번 겹칠지언정 우주에 단 하나뿐인 핸드메이드다.
대신 자유를 선택한 대가를 치를 때도 있다. 패키지여행과 비교해 숙박비가 비싸거나, 단체로 이용하는 버스 대신 현지의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할 때 지불하는 높은 교통비라든가. 그런 일은 아직 없었지만 완벽한 치안에서 조금 벗어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여행의 위태로운 순간을 이겨낼 정도의 지성과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다. 세상의 모든 순간은 처음이다. 우리는 매일 다른 처음을 맞이하고 다음 날 또 다른 처음을 만나면서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면은 삶의 진로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처럼’ 살아야 안전하고 평온할 거라 여겨지는 사회에 살면서 남들처럼 사는 데 관심이 없는 우리 부부는 숱한 잔소리와 오지랖을 경험해야 했다. ‘무난하게’ 살 수 있는 보통의 길을 두고 아이 없이 잘 살겠다는 우리가 비주류로 보일 수도 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다들’에 속해 있지 않은 바람에 언젠가 아이를 키우는 또래들과의 대화가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대신 마음만큼은 가장 편안하고 흡족한 자유 여행의 세계가 아닐까. 나를 둘러싼 환경과 모든 선택을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여행의 가치는 자신을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살고 싶은 내 가치관의 복제였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이루고 싶은 바에 다가가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삶, 그 길에 동행하는 배우자도 원하는 바에 다가가는 삶이길 바랐다.
그 여정에서 아이를 원한다면 낳을 것이고, 원치 않는 다면 안 낳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마음의 방향에 정직하게 살기로 한 이상 아이는 ‘낳아야’ 하는 대상이 아닌 ‘원하면 낳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렇게 주변 시선과 가족들의 의견을 겁내지 않고 나와 남편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흡족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20대에는 괜찮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모으고, 30대에는 결혼해서 24평 아파트에 가정을 꾸리고, 40대에는 자식들 교육하는 데 열을 올리고, 50대에는 골프 치고 브런치 먹으며 느긋하게 사는 패키지여행과 같은 인생은 우리 부부에게 맞지 않았다.
나이와 관계없이 원하는 공부를 언제든 시도하고, 친구들이 사는 집 평수에 연연하지 않은 채 도서관과 공원이 가까운 동네에 짐을 풀고 산다. 지금 하는 일에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길을 찾아보고, 아침에 일어나 바다가 보고 싶다면 가방 하나 챙겨 떠나는 자유 여행과 같은 인생이 우리 부부에게 맞는 옷이다. 우리는 그 옷을 직접 골라 입는 ‘선택’에 성공했다.
언젠가 교토의 금각사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교토를 둘러보는 여행 중이었는데 폐장 시간 가까이 머무르다 나왔더니 금방 어둑해졌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역으로 돌아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주변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금각사와 바로 앞 상점을 제외하면 관광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집마다 담장에 걸어둔 화분이며,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봤을법한 아주 작은 슈퍼마켓을 둘러본 일은 지금도 소중한 기억이다.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맞게 여행 방식을 고르듯,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 맞게 가족계획을 짜는 건 당연한 이치다. 마흔이 그리 멀지 않은 지금, 내게 패키지여행과 자유 여행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묻는다면 여전히 내 선택은 자유 여행이다.
최근 선보인 딩크 에세이는 오늘 정식출간된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의 일부입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쓴 이야기입니다. 딩크족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신간 리뷰도 곧 적어볼게요.
독자님들, 늘 고맙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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