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추억에서 소외되지 않아서 그래도 다행이다.

by 귀리밥

글쓰기 강연이 잡혀 집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는 날, 그 장소가 고향인 인천이라면 휴대폰 전화번호부 목록을 뒤적여 누군가에게 연락한다.

“나 며칠 뒤에 너희 동네 근처 갈 일 있는데, 점심 어때?”

제안을 받은 상대는 대번에 반긴다.

“좋지! 몇 시 도착이야?”


노트북과 카메라를 이고 헐렁한 작업복 차림이 아닌 단정한 차림새와 수업자료를 넣은 USB 하나만 챙긴 날이라면 그 여정에서 누굴 만나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인천에서 수업이 잡히는 날 혹은 일정이 있는 날은 옛 친구나 선배에게 연락해 조우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제나 이른 점심시간 무렵에서 자녀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약 3시간 내외다. 지금이야 거리낌 없이 약속을 잡지만, 이 짧은 만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몇 년쯤 걸렸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저녁에 만날 수 없었다. 노을의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거리를 산책하고 맥주 한잔하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해가 쨍한 낮에만 약속을 잡는 게 마뜩잖았다.


결혼한 여자가 해진 뒤 돌아다니면 큰일 날 것도 아닌데,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낮에 약속을 잡더라도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는 집에 돌아와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친구들의 아이가 태어나면 약속을 잡는 것은 더욱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약속 장소는 대개 친구의 집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친구의 아이들이 얼추 자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아진다. 아이들이 등원하면 낮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드디어 집이 아닌 밖에서 맛있는 음식과 차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혼 전처럼 저녁에 거리를 쏘다니거나 술을 마실 기회는 여전히 희박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나도 결혼을 했지만 자녀가 없어서인지 저녁 시간의 자유는 여전하다. 남편과 정한 서로의 통금시간만 어기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해가 지기 전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한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친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여전히 해가 뜬 낮 시간만 허용되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 비교적 결혼을 늦게 하고 자녀가 없는 나는 이런 면에서 몇 년간 홀로 불만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를 잠깐 누구에게 맡길 수는 없나, 퇴근한 남편에게 바통터치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허구한 날 이른 점심 식사와 커피 한 잔이 전부라 답답했다. 전시회나 영화를 보러 가려면 시간이 애매하고 경치 좋은 관광지에 구경 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결혼했기 때문에, 아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씩 포기해야 하는 게 있다면 이런 영역이었다.

상황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도 나 역시 서운해진 나머지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나 남편에게만 집중하게 됐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여전히 살고 있는 친구들과 서서히 옅어지는 우정, 서운함과 답답함이 한 데 묶여 마음속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내 쪽에서 기별이 뜸하면 또 뜸한 대로 서운함이 무뎌졌고 다시금 연락이 왔다. 통 연락이 없는 내게 친구들은 한 번씩 안부를 묻고, 어떻게 사느냐며 멋쩍은 질문을 했다. 어쩌다 꿈에 내가 나왔다며 연락하는 친구는 엉뚱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했다.


서운함의 들숨과 무뎌짐의 날숨이 반복되는 동안 어느덧 나는 결혼 6년 차가 됐다. 이제 주변에는 자녀가 중학교에 입학한 친구가 있고 아직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기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자녀 덕에 허둥대는 친구도 있다. 아이의 스케줄에 자신의 일상을 끼워 넣고 사는 친구들을 십 년 가까이 지켜본 나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에 무뎌졌다.


한 생명을 낳아 온전히 책임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치 거대하다. 그 거대함에 눌려 친구들은 차 한 잔의 여유도, 맛있는 외식의 기억도, 예쁜 옷을 입고 나풀거리는 외출에도 의미부여를 할 수 없었을 터다. 당장 눈앞에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그 무게감을 지켜보고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데 ‘만나서 노는 게’ 대수였을까.


이런 깨달음에 닿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나는 이제야 볕이 가득한 시간에 만나 여전히 볕이 가득할 때 헤어지는 루틴에 아쉬워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일 년에 한 번쯤,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서 만나는 친구들과 이른 점심을 먹고 서둘러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렇게 일찍 헤어져도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의 발걸음이 종종거린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볍게 자리를 정리한다.


그래서 일이 있어 고향으로 향할 때 옛 친구들과의 시간을 조각조각 맞춰본다. 친구가 아이를 학교나 교육 시설에 등원시킨 뒤 간단하게나마 집을 치우고 머리 한 번 매만지고 나올 수 있는 시간에서 시작해 자녀가 하원 하거나 방과 후 학교를 마치는 시간까지.


나는 강연이나 미팅을 빗겨 친구와 시간을 이어 보고, 그 사이에 여유가 생긴다면 미리 카페에 도착해 책 한 장 들춰볼 채비를 마치는 것. 이렇게 서로의 시간을 잇다 보면 작디작은 천 조각을 이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던 퀼트 시간이 떠오른다.

조각조각 이어 만난 날이면 그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자며 밀린 이야기를 급히 꺼내고, 이왕이면 그날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골라본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개인으로서 성품과 취향을 드러내며 앳된 얼굴로 돌아온다. 긴장했던 어깨는 하얀 머랭처럼 풀어지고, 물오른 살구처럼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그리고 짧은 만남의 시간이 끝나고 헤어질 무렵 친구들은 다시 엄마의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한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우리 자주 이렇게 보자.”

“얼굴 보니까 너무 좋다.”


집에 돌아오는 아이에게 따뜻한 엄마로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나면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귀갓길에 나선다. 돌아가는 길엔 우리 중에 누구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찾아와 한 번씩 안부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되새긴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키우지 않는 내가 적절히 섞여 있는 사회라서 이 정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이왕이면 친구들 역시 육아라는 의무에 꽁꽁 묶여 있기보다는 직업이든 취미든 자신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기 전에 이렇게나마 추억에서 소외되지 않은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함께 웃는다. 책임감을 짊어진 너와 조금 수고스럽게 사는 내가 만날 수 있어 그래도 다행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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