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출산도 장려받는다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해명해야 하는 세상

by 귀리밥

광고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끌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를 ‘3B’라고 한다. 3B는 Baby, Beauty, Beast로 화면에 귀여운 아기, 미녀, 동물이 나오면 주목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화면에서 B 중의 하나, 아기가 자주 보인다. 그것도 몹시 귀여운 아기. 방송사마다 하나쯤 방영하는 육아 예능에서 말이다.


우리 집엔 TV가 없다. 나와 남편은 한없이 늘어지거나 습관처럼 멍하게 화면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TV를 사지 않았다.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노트북으로 스트리밍 하는 정도다. TV를 볼 일이 딱히 없는데도 나는 육아 예능에 등장하는 아기들을 대부분 안다. 그만큼 다른 여러 매체에서 육아 예능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 올라와 있는 키워드를 하나씩 클릭하며 간밤에 일어난 이슈를 살펴본다. 육아 예능이 방영된 다음 날 오전에는 순위에 아기 이름이 반드시 있다. 남의 집 아이 이름을 이런 식으로 자꾸 알게 되니 왠지 웃기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즐겁게 방송을 시청했고 흥미로웠으리라 짐작한다.

lens-3143893_1920.jpg

육아 예능은 육아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이 공감하게 만든다. 화면에 드러난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표정과 사랑스러운 애교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녹인다. 육아의 고충을 낱낱이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육아의 어려움은 아이의 사랑스러운 웃음과 순수한 태도면 술술 넘어갈 수 있고, 어떤 난관도 아이 앞에선 극복할 수 있다고 귀결된다. 그리고 육아 예능을 보며 아이 없는 부부나 언젠가 결혼하고픈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이렇게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아, 나도 ○○이처럼 예쁜 아기 하나 낳고 싶다.”


여기까지 도달했다면 육아 예능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육아 예능 속 유자녀 가정의 즐겁고 사랑스러운 풍경이 추구하는 바는 결국 ‘출산장려’ 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인구절벽으로 다수가 고민하는 이 시대에 마치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들을 내세워 미디어가 벌이는 출산장려 페스티벌. 이 거친 세상에서 어떤 고충이 몰려와도 내 아이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인생 박카스의 압축형 버전 같다.


이래서 ‘예능은 예능으로 보라.’는 말이 있는 걸까? 이런 출산장려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마음속에서 잠시 쉬고 있던 의문이 벌떡 일어나 말을 건다.

“그런데 아이 없는 집 예능이나,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오는 예능은 왜 없을까?”


남의 집 아기 이름을 쉽게 기억할 정도로 육아 예능이 활발한 시대에 비출산과 비혼, 무자녀 가정의 일상과 고충 해결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은 왜 아직 하나도 없을까? 몇 년간 인기를 끄는 한 예능 프로그램이 독신 남녀와 1인 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독신과 1인 가구는 비혼과 동의어가 아니다.


딩크족 방송인 몇몇의 이름을 기억한다. 역시 검색어 순위 덕분이다. 전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이 비출산이거나 비혼을 선택했을 경우에도 검색어에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육아 예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동기’의 유무다.


딩크족이거나 비혼인 연예인 혹은 유명인이 방송에 등장하면 어김없이 묻는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그러면 질문받은 사람은 순순히 답을 해준다. 그리고 그 답변은 자극적인 한 줄로 요약되어 방송 리뷰 기사로 밤새 언급되고, 다음 날 아침에 포털 사이트를 살펴보는 나 같은 사람의 눈에 들어온다.


개인의 의사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선택에 해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딩크족이라면 아이를 왜 안 낳았냐며 사적인 질문을 해도 난감한 기색을 표현하거나 거부하지 못한 채 답변을 들려줘야 하는 것이 나만 어색한 건가?


또 그 답변의 내용이 모두가 공감할 만큼 무난하거나 깍듯하지 않으면 남녀노소 불문 절대다수에게 쉽게 공격받곤 한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딩크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언급할 때 살펴보면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많다.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기적이다”, “그럴 거면 왜 결혼했냐”, “나중에 후회하겠지.” 등의 댓글들로 구만리 같은 앞날이 도배되고도 남을 것이다.

people-2591874_1920.jpg

비혼도 마찬가지다. 포털에 ‘비혼 연예인’만 검색해도 비혼을 선언한 연예인들의 이름과 비혼의 이유가 함께 소개된다.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야 하고, 그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만 하는 것은 왜일까?


반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부나 방송인에게 “넌 왜 아이를 낳았니?”라고 묻지는 않는다. 딩크족과 비혼인에게 합당한 이유를 꼭 듣고 싶어 하는 인식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기울어진 운동장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한 번쯤 생겼으면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딩크 예능’이다.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생활과 즐거움, 고충을 보여주며 부부로 살아가는 방식이 획일화되지 않았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삶 외에 어떤 식으로든 나의 삶을 기획하고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 거기에 재미까지 곁들인 딩크 예능이 나오면 좋겠다. 내가 본 것은 비혼인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뿐이었다. 출산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삶은 다큐일 수 있지만 예능이 될 수도 있다.


솔직히 나는 장려받고 싶다. ‘장려’는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준다는 의미다. 출산이라는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주는 것처럼, 아이 없이 배우자끼리 즐겁게 살도록 힘을 보태주고 결혼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응원받고 싶다.


나라가 유자녀 가정에는 ‘장려’라는 이름으로 돈도 주면서 무자녀 가정은 알아서 잘 살라고 방치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미디어까지 나서서 출산만 장려하는 건 서운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성이 장려받고 알려지는 계기는 살짝 고개를 돌린 카메라의 시선에서,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본 펜 끝에서 시작된다.


이전 05화아이 없는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