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프리랜서

사람이 경제적 벌이를 하는 기준이 육아일까?

by 귀리밥

프리랜서 작가 겸 기자로 일한 지 올해로 5년 차. 이제는 주변에서 내가 딩크족인 것도, 프리랜서인 것도 다들 알고 있어서 별다른 말이 없지만, 정규직 생활을 정리하고 프리랜서가 될 무렵에 숱하게 들은 얘기들이 있다.

“프리랜서 시작하려는 거 보니 임신 준비하나 봐?”

“집에서 애 보면서 편하게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결정한 이유에 출산과 육아의 영향은 티끌만큼도 없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여 흠칫하고 말았다.

‘도대체 다들 프리랜서라는 직업 형태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프리랜서’라는 이름에 하필이면 자유free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들어가는 바람에 사람들은 내가 늦잠 자고 일어나 브런치를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타닥타닥 타자 치며 일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desk-1081708_1920.jpg

나는 서재에서 노트북과 더블 모니터를 두고 일한다. 긴급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노트북 한 대 들고 카페에서 일하는 것만큼은 오히려 불편해서 피하고 싶다. 평소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만 겨우 하고 자리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손목이 부서져라 일한다. 점심 식사에 긴 시간도 들이지 못한다.


취재가 있는 날은 온종일 집 밖에서 생활한다. 오죽하면 기차든 버스든 머리만 대면 쿨쿨 자고, 기차역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는 게 몹시 익숙하다. 업무용 백팩에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항상 챙겨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내 직업의 실상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여성 프리랜서=육아맘’이라는 공식은 내내 불쾌했다. 프리랜서로 일하게 된 계기는 조직 생활에서 더는 행복할 수 없는 내 기질과, 유연한 시간 조절로 잃어버렸던 건강을 되찾고 싶어서였다. 그런데도 하필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는 내게 사람들은 모든 걸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라도 애를 키우기 위해 프리랜서를 시작했냐는 시선과 질문을 무수히 던졌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전환하게 된 진짜 이유를 털어놓으면 조금은 의아해하거나 내 계획에 없던 임신을 상상하기도 했다.

“임신 생각해서 프리랜서 하는 거 아니었어요?”

“애도 안 낳을 건데 굳이 프리랜서 해야 되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음에도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 홀로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어째서 프리랜서의 삶이 곧 아이를 키우는 삶과 동일하거나 교집합으로 평가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상상하고 있었다.


여기서 질문이 확장되기도 한다. 아이 없는 전업주부, 육아를 하지 않는 전업주부에 대한 시선이다. 언젠가 전업주부인 지인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 왜 애가 없는데 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프리랜서면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었듯, 지인은 그곳에서 아이도 없으면서 전업주부인 별종이 되고 말았다. 내가 직접 들은 질문이 아니었음에도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는 내내 해답 없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사람이 경제적 벌이를 하는 기준이 육아일까?’


그렇다면 지금 돈벌이를 하지 않는 일정 나이대의 성인은 무조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걸까? 돈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체 구조상 출산을 맡아야 하는 여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 끊임없이 돈벌이를 하거나. 아이를 낳고도 돈벌이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반드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둘 중 하나다.


사실 어떤 사유 없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썩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흔히들 ‘빨대를 꽂는다.’라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이들이 있다. 목표도 목적도 없이 집에 누워 잠만 자고 텔레비전만 보면서 육아와 가사의 책임까지 타인에게 떠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책임은 싫다면서 밖에 나가 소비를 하고 유희를 즐기고 경제적 부담은 모조리 배우자에게 지우는 사람은 성별과 관계없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부부는 운명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의 무게가 기울어진 부류의 생활방식은 마땅치 않거니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

desktop-3820634_1920.jpg

하지만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돈벌이에 상응하는 대가로 출산과 육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결이 다르다.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키워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삶에서 존엄을 찾을 수 있을까. 돈을 벌지 못한다면 애라도 키워야 한다며 의무감으로 사는 게 과연 사람으로서, 주체적 사고를 하는 성인으로서 존중받는 삶일까.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출퇴근하지 않은 채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이유로 가사를 떠맡아야 하고, 딩크를 선택한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직업의 형태와 출산의 선택은 별개다. 누군가의 업무 방식을 애 키우기 좋다느니, 시간이 넉넉해서 당연히 애 낳을 줄 알았다느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녀의 유무로 타인의 삶을 쉽사리 재단할 수는 없다.


프리랜서로 일하든 전업주부든 맞벌이든 외벌이든 돈벌이를 선택하는 기준에 자녀의 유무를 잠시 지워보자. 자녀의 유무에 따라 전업주부를 옳다, 그르다 평가하고 맞벌이와 외벌이를 비교하는 대신 주체적 사고를 가진 성인으로서 선택한 삶의 방식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오롯한 한 사람을, 한 가정을, 소중한 개인의 말간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이전 04화주택청약에 필요한 건 아마도 ‘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