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각각의 이름으로 청약통장을 하나씩 갖고 있다. 청약이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 일단 만들어두면 도움이 된다는 말에 휩쓸려 가입한 후 매달 소액의 돈을 넣고 있다.
청약통장의 쓸모는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조금씩 알게 됐다. 청약통장으로 번듯한 집을 마련했다는 어느 연예인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알게 됐고, 친구 중에도 청약통장으로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왔다. 적당한 잔고, 꾸준한 입금내역, 몇 가지 조건이 잘 맞으면 시세보다 괜찮은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우리 부부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녀와 부양가족이 없어 가점을 받기 어렵다는 거였다. 납입 이력만으로는 1순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1순위만 1400만 명이라고 한다. 정작 당첨에 유리한 점은 무주택 기간과 자녀의 수, 부양가족 등이다. 이 조건에 맞춰 청약가점을 계산해 보니 우리 부부는 아주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더라도 마음에 꼭 드는 위치에 집이 들어선다면 한 번쯤 청약 신청을 해볼 요량이었다.
마침 어느 설 명절, 시가에 방문했을 때 시어머니께서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셨다.
“예전에 너희 이모가 살던 그 동네에 아주 크게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단다. 올봄에 청약 신청받는다고 하니 너네도 한 번 신청해봐.”
귀가 솔깃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보다 남편의 출퇴근이 늘 걱정되다 보니 다시금 서울에 집 마련을 꿈꾸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떨어진다 한들 손해 볼 것도 없고, 청약에서 떨어지면 다른 방법으로 이사를 고민하면 될 일이었다.
시어머니도 당첨만 된다면 시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그 대단지에 우리가 살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거기 살면 근처에 지하철 라인도 두 개나 있고, 올림픽공원도 가깝지. 단지 안에 이것저것 생기니까 살긴 정말 좋을 거야. 혹시 미분양 나올 수도 있으니 일단 한 번 넣어봐.”
살짝 들뜬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넣긴 넣어볼 건데 아마 안 될 거야. 우린 무주택자가 아니고 자식도 없어서 가점을 별로 못 받거든. 얼마 전에 계산해봤는데 가능성이 거의 없더라고.”
점수가 나쁘긴 해도 한 번 넣어봐서 나쁠 것 없다는 데 모두 동의한 분위기를 깨버린 사람은 시아버지였다.
“청약 신청할 때 임신하면 된다!”
시아버지 입에서 주택청약 시 임신 중이면 된다는 말이 흘러나올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주택청약 때문에 임신이라도 하라는 거야?’
시아버지는 내 의심에 못을 박듯 한마디 더 했다.
“지금은 애가 없어도 청약 신청할 때 임신 중인 거 증명하면 된다니까!”
주택청약 신청 기간에 맞춰 임신하면 걱정할 게 없다는 소리가 다시금 시아버지의 입에서 퍼져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주택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임신하면 된다는 발상이라니. 당사자인 나는 이런 소릴 듣고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명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지만 덮어버릴 순 없었다.
“그래도 주택청약 때문에 임신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몹시 당혹스러웠지만 애써 차분하게 묻는 내 말에 시아버지는 대꾸조차 하지 않으셨다. 어차피 소용없었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가치관에는 주택청약과 부동산 수익은 매우 중요하고, 부의 축적을 위해 시기적절하게 자녀를 갖는 건 흠도 아닐 것이며, 부모로서 아들 부부에게 임신 운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실 테니 말이다.
그 때문에 시아버지는 악의 하나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청약 신청 무렵에 임신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거다. 나와 남편에게 어떤 상처나 스트레스를 주겠다는 의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대단히 실용적인 조언이라도 주는 듯 당당한 시아버지의 말에 나는 그저 재산증식의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절마다 시아버지에게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를 무수히 듣고 오지만 이날은 집에 돌아가는 내내 속이 뚝배기처럼 보글보글 끓었다. 남편 역시 딩크족으로 살겠다는 우리 부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낳으라며 눈치 주는듯한 시아버지의 언행에 짜증이 난 상태였다. 이러자고 있는 명절이 아닌데, 이런 소리나 들으려고 부지런 떨어 발걸음 한 게 아닌데. 우리는 이 문제로 며칠 내내 불쾌함을 지울 수 없었다.
청약에 대한 고민과 명절의 불편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고도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은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더불어 자녀의 유무가 청약에 영향을 주는 구조에 대한 의문이었다. 애초에 자녀가 있어야만 주택청약에 유리하다는 게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커진 것이다.
자녀가 있으면 주택이 절실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물건과 공간이 필요하다. 집을 보러
다닐 때 자녀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은 가구와 짐의 양이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자녀의 학업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기반 시설을 생각하면 오래도록 자리 잡고 살아야 할 집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자녀가 없다고 해서 집이 필요치 않고, 기반시설과 거리가 멀어도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자녀가 없지만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이 가까워야 하고, 강아지를 키우고 있으니 동물병원도 가까웠으면 한다. 도서관 이용 빈도가 높으니 기반 시설과의 거리도 중요하고 자녀가 있든 없든 모두에게 치안과 교통편의는 중요하다. 그러니 자녀의 유무와 관계없이 보통의 사람이라면 주택청약에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다.
그런데 적용되는 조건은 그렇지 않다. 통상적으로 4인 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2인 가구인 딩크족이라면 불리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가 있으면 가점을 주고, 자녀가 없으면 가점이 없다. 깨끗하고 편리한 새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은 모두에게 있는데, 자녀가 없으면 뒷 순위로 밀려나 집은 능력껏 해결하라며
선을 긋는다. 제도에 따르면 무자녀 가정은 집을 비싸게 사든, 좁고 지저분한 곳에 살든 알 바가 아니란 식이다.
우리나라에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는 건 입 아프게 말해 무엇 하지만, 정부는 유자녀 가구 중심의 ‘정상 가족’의 틀을 고수한다.
한편 프랑스는 출산율이 지속해서 감소하자 동거 커플인 팍스(PACS)를 인정했다. 그래서 꼭 결혼하지 않아도 동거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결혼한 가정의 자녀와 동일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결혼이라는 틀에 묶이기 싫어하는 세대의 의견을 반영해 사회가 유연하게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 나라에서도 가정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함에 따라 삶의 기반이 되는 주택 제도를 다시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삶의 행태에 사회가 맞춰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의 청약제도는 ‘이 사회가 바라는 정상 가족의 형태는 유자녀 가구이니, 자녀가 없는 너희들은 불리해도 버티라’고 말하는 사회적 강요일 뿐이다. 자녀나 부양가족이 있으면 주택을 유리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 주겠지만, 자녀가 없는 사람은 열외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 치사한 제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태와 마음가짐은 시시각각 변해 가는데 꾸역꾸역 유자녀 가정을 고집하는 시대착오적 제도는 생명력이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유교 사상에 흠뻑 절어있는 우리 사회도 불합리한 청약제도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을 언젠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