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에 대하여

어른들이 말하는 모성이 어쩌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귀리밥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할 때면 미래의 결혼상대에 대해 곧잘 상상하곤 했는데, 나를 포함해 다수의 친구들은 ‘좋은 아빠감’인 결혼상대를 바라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폭력을 쓰지 않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여가시간은 아이와 나누며, 가족 구성원의 건강과 안녕을 중요한 가치로 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마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그런 ‘좋은 아빠’를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좋은 아빠의 역할을 지금 내 친구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친구들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는 좋은 아빠의 역할을 주도하지 않고 ‘돕는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토록 좋은 아빠감의 결혼상대를 꿈꾸고 기다렸는데 결국 만나지 못한 걸까? 적어도 연애하는 동안의 남자는 좋은 아빠감이었던 게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그 아빠들의 변화가 그들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 친구의 편을 들어 그들 남편의 흉을 봤다. 어쩜 그렇게 지밖에 몰라? 애는 너 혼자 키워? 너 혼자 만든 애가 아니잖아! 등등의 뾰족한 말을 공유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달라진 것 없이 ‘독박 육아’를 하는 가정일 뿐이다. 돌아간 친구들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아이가 남긴 밥을 대충 먹고, 남편이 허기를 달랠 정도의 음식을 장만하고, 너저분한 집을 치우고, 아이를 재우고, 그제야 본인의 몸을 씻는다.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데 시간을 배분하지 못하고,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구조가 사실 아빠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닿은 것은 결혼 후였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부부 두 사람 중 육아를 전담할 사람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당연히 소득이 적은 쪽이 그만두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의 성차별이 여러 차례 화두에 올랐음에도 요지부동이다. 그러니 주로 임금이 적은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남성이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공고해질 뿐이다. 오롯이 경제만 담당하면 제 할 일을 다 한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육아를 공평하게 나누는 게 가능하긴 할까?


또 아빠와 엄마의 역할 중 양분되는 것의 하나로 ‘모성’이라는 게 여간 찜찜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는다면 남편과 내가 공동의 행위로 만든 아이일 텐데, 당연하게 여성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모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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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는 모성이 있어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엄마가 키워야 아이가 반듯해진다고도 했다. 굉장히 억울했다. 모성이란 여자가 타고날 재능이어야 하고, 그것이 남자의 부성보다 강해서 자기가 이룬 것을 거뜬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숙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모성이 어쩌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더욱 그렇다. 주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모두 처음부터 모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증언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아이를 정말 원해서 낳아 키우는 사람도 있고, 주변의 시선과 압력에 못 이겨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처음부터 아이에게 절대적인 감정이 생기는 게 아니라 키우다 보니 육중한 책임감에 세뇌당하고, 책임감과 모성 사이에서 헷갈려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래서 의심하게 됐다. 가장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이룬 나라에 태어나 살다 보니 아이의 양육은 낳은 사람에게 맡겨버리곤 그 이유를 모성이라고 둘러댄 건 아닐까. 그리고 급여로 보상받지 못하고, 휴가도 없고, 퇴근도 없이 하루 24시간을 모두 쏟아야 하는데도 불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로 모성을 강요한 건 아닐까.

물론 열 달을 품어 낳은 자식이 살뜰하게 예뻐 강한 모성을 느끼는 엄마들이 있다. 하지만 일부의 엄마에겐 모성이 존재하지 않는데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모성이 생기는 거야!’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강제로 모성을 주입당한 채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닐까.


그동안 아빠는 돈을 벌어온다. 아이로 인해 아빠에게도 자유가 사라진다. 아빠가 자유로우면 엄마와 아이가 먹고 살 돈이 사라지니 말이다. 만약 자유로웠다면 그들은 좋은 아빠감이었던 시절을 그대로 간직했을까? 나와 친구들이 청춘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은 가부장적 구조에 시들대로 시들어버린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현재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내겐 당연히 모성이 없다. 만약 내가 진정으로 아이가 갖고 싶고, 양육에 대한 부푼 미래를 생각한다면 모성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자라고 해서 무조건 모성을 탑재하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결혼한 지 6년째 접어든 요즘도 사람들이 곧잘 내게 묻는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가정의 코스인 듯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은 매우 크다’, ‘여자라면 아이를 한 번 낳아봐야’, ‘아이가 있어야 이혼하지 않고 가정이 오래간다’, ‘아이가 없으면 어른들과 사이가 나빠진다’ 등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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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은 그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필요한 육체적 노동력, 아이로부터 받는 상처에 비례할 것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한 번 낳아봐야 한다면 번식을 위한 생식활동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가 있어야 이혼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있어도 이혼하는 수많은 가정이 설명되지 않는다. 아이가 없으면 어른들과 사이가 나빠지겠지만, 아이가 있어도 어른과 잘 지내는 것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대답을 사용해보고, 최근에는 간편하게 ‘내겐 자격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아이를 낳아 잘 키울 마음이 없으니 그것은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도로 정리해 말한다.


그 자격이라는 것이 만약 모성이라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아이를 낳아 즐겁게 키울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이 찾던 ‘좋은 아빠감’ 못지않은 ‘좋은 엄마감’이 진심으로 아이를 기다리고, 낳아 기르는 세상 말이다. 한편으로는 자격 없는 나 같은 사람이 편견으로부터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세상 역시 조금씩, 아주 느리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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