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6년째라는 것을 밝히면 사람들은 일단 우리 뒤쪽에 서있는 아이가 없는지, 업힌 아이가 없는지 짧은 곁눈질로 살펴본다. 그리고 예상했던 ‘아이’가 없으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질문한다.
“애는요?”
“아직 애는 없구나?”
“아이는 천천히 가지려나 봐요?”
하지만 어떤 질문에도 우리가 선택한 답은 없다. 우리의 아이는 아직 없는 것도, 천천히 오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딩크족이다. 딩크, Double Income No Kids 다. 미국의 베이비 붐 시대에 생겨난 신조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를 딩크족이라 부른다. 우리는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가질 계획이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우리 부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가족계획은 오롯이 부부의 선택에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부부만의 선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극히 당연한 가족계획임에도 우리 부부는 사람들에게 ‘특이한 부부’, ‘요즘 사람들’ 혹은 ‘이기적인 사람들’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특이하다거나 요즘 사람이란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아니다. 인구증가에 공헌하지 않는 것을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2인 가구가 거리낌 없이 살기에 다소 혹독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딩크로 살게 됐는지, 살고 있는지 오늘부터 조금씩 꺼내보기로 한다.
20대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도 아이를 낳는다면 서너 명 낳아 항상 활기차고 북적이는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세 자매 중 한 명으로 자라 경제적 허기를 적지 않게 겪었음에도 이상하게 아이는 하나가 아닌 여럿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무의식 속에 키우고 있었다.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당연히 아이를 낳게 될 것이고, 어떻게든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아이는 알아서 큰다.”지 않던가? 기억하는 한 나 역시 어릴 적 혼자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당연함’에 힘입어 나는 자녀문제에 관한 별 걱정 없이 결혼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결혼 직후 집에서 엄마와 대화를 하던 중 아무렇지 않게 엄마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엄마, 나 나중에 아기 낳으면 엄마가 키워줘?”
“니 자식을 왜 내가 키우니?”
놀라긴 했지만 엄마 말이 맞았다. 내 가정에서 생겨난 아이를 엄마에게 떠맡기는 건 완전한 불합리였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가 낳았으면 나랑 남편이 알아서 해야겠네. 그런데 엄마, 나처럼 회사 다니고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 어린이집 같은 데다 맡기는 거야?”
“어린 자식 남의 손에 맡기는 거 아니다. 니가 키워야지.”
“그럼, 나 회사는?”
“그만둬야지.”
“그럼 내 직업은?”
“애 낳으면 다 조금씩 포기하는 거야.”
“내가? 왜?”
“넌 어쩜 그렇게 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려고 하니?”
일어나지도 않은 가정을 풀어놓았다가 아차, 싶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는 낳은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을 전혀 모른 채 살아온 것이다. 맞벌이를 한다면 누군가 키워주는 게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구하기가 쉽지 않고, 만약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구한다면 비용이 상당해지는 것이다.
나도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 엄마가 전업주부로 집에 계셨다. 엄마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고 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사업도 하고 싶었단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엄마는 집의 일부에 세를 놓았다. 그리고 내 또래 두 딸을 키우는 젊은 부부를 셋방 가족으로 들였다.
아마 셋방에 사는 동갑내기 아이와 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함께 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셋방 가족의 아주머니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본인의 자녀와 함께 나를 돌봐주곤 했다. 엄마는 셋방 가족을 들인 후 장사를 시작하셨다.
언니들을 낳고 나를 어느 정도 키울 때까지 10년여의 세월을 어떻게 살림만 했나 신기할 정도로 엄마는 장사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애매하게나마 아이를 맡길 구석이 없었으면 언제까지고 엄마는 나를 떠안고 집에 있어야 했다. ‘애 낳으면 조금씩 포기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요즘 같아선 그 ‘맡길 구석’을 찾기도 참 어렵다. ‘시설’에 보낸다는 건 편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내 사례는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 유치원생인 아이들을 보면 저렇게 작고 여린 아이를 두고 일을 나가는 게 가능할까 싶다.
이런 상황들을 떠올리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자녀계획은 굉장한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만약 양육을 위해 내가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적어도 ‘워킹맘’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키울 때까지 일을 쉬어야 한다. 예상대로 ‘경력단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열심히 살며 쌓은 경력을 육아 때문에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울감이 몰려왔다. 20대에는 어느 정도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적어도 나 하나 감당할 연봉을 받아야 결혼할 자격을 조금 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는 직업과 연봉이 한몫했으니 말이다.
나는 아직도 결혼 전 시어머니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들었던 질문들을 기억한다. ‘대학은 어디? 전공은? 연봉은? 회사 직원 수는? 회사 육아휴직은? 모아둔 돈은?’ 초면에 조금 무례한 질문이긴 했다만, 시어머니 입장에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요소들이긴 했다.
자아실현을 위해 무수히 겪었던 시행착오, 싫은 것도 참아가며 쌓아왔던 경력이 육아를 위해 말끔히 정리될 수 있는 거였다면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아야 했을까? 십 년 가까이 일한 내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그만둔다는 건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정체성에 폭력을 가하는 일이었다.
엄마와의 대화 후 나는 줄곧 생각에 빠졌다. 이런 내 심정을 남편에게도 스스럼없이 표현했고,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만의 선택과 희생으로 자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고민의 무게는 분명 부부가 반씩 나눠야 하며 한 명의 의지와 의견에 따라서는 안 된다.
나와 마찬가지로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자던, 그것도 꼭 딸을 낳자던 남편은 나와의 오랜 대화 속에서 육아에 대한 무게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남편은 육아를 ‘도와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기 낳으면 내가 목욕은 시켜줄게.”
“근데 아이는 아들 말고 꼭 딸이었으면 좋겠어. 딸이 예쁘잖아.”
“아기 낳으면 내가 데리고 검도 다닐게.”
남편은 아내가 10년 가까이 해오던 직장생활을 멈추고 퇴근도 휴식도 없이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게 될 육아에 대해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성별까지 미리 정하고 딸 바보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니, 줄줄이 아들이라도 낳으면 딸이 태어날 때까지 계속 낳아야 한단 말인가? 그랬던 남편에게 내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기쁨 못지않은 무거움이었으리라.
내 나이 서른둘 끄트머리에 결혼했으니 노산을 하지 않으려면 서른다섯 살까지는 아이를 낳는 게 좋았다. 그전에 고민을 끝내야 했다. 우리는 결혼 2주년이 될 때까지 열심히 고민해 보고 자녀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나중에라도 후회가 없으려면 고민은 최대한 많이 할수록 좋을 테다.
나와 남편은 고민하고, 상상하고, 다방면으로 계산을 해봤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부부와 낳지 않은 부부와 대화를 나눴고, 관련 사례나 서적을 살펴보며 2년간의 자녀계획에 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