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의 노후 대비

자녀에게 미래의 외로움과 누추함을 해결해 달라는 투정은 안 된다.

by 귀리밥

너무나 까마득한 미래라서 조금은 피하고 싶은 게 있다면 ‘노후’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노후 대비라는 말은 어렵고 복잡해서 저만치 미뤄둔 마지막 숙제 같다. 다이아몬드 콕콕 박힌 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평범한 근로자인 우리 부부에게 확실한 노후 대비가 가능하긴 할까? 나이 먹고 은퇴한 뒤에 남루하게 살지 않으려면 확실한 계획과 많은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100%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주택을 구입하면서 대략적인 노후 대비 시점을 정했다. 현재까지는 계획에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자녀에게 드는 비용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빈곤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노후를 준비하는 중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미래다.


그래서인지 가끔 얄밉다. 먼 미래에 ‘자식’이라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늙고 힘없을 때 곁에 있어주는 건 자식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랑으로 키워놓고선 그 사랑을 언젠가 보상받으려는 사람들이 얄밉다. 간혹 자녀가 그 주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이런 말도 나온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침 드라마에 나올법한 멘트지만, 한 번씩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거스를 때 농담처럼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 먹고 힘없을 때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기대고 싶은 게 자식일 수도 있고 언젠가 외로움이 커질 때 감정적으로 기대고 싶은 대상이 자식이 되기도 한다. 갱년기가 찾아오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뒤 독거노인이 됐을 때, 노년의 허망함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자녀에게 의지하고 함께 다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사실 우리 부부가 자식이 없어 후회할까 봐 걱정했던 부분도 이 대목이었다. 우리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뜨면 자녀가 없는 나머지 한 명은 외로움과 슬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없는 삶이 우리에게 보다 유리하다고 선택한 사유는 명확했다. 부모세대가 우리에게 의지할 때, 의지를 넘어 의존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미처 모를 수 있는 무게감을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정에 어려움이 처하면 온 가족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문제를 해결했다. 그 때문에 적금도 자주 해지했다. 이런 책임에 대한 문제들로 자주 괴로웠다. 갱년기에 접어든 엄마는 서른 줄에 접어든 나에게 수시로 농담처럼 떠봤다.

“너는 결혼 안 하고 나 데리고 살면 안 돼?”


경제적 능력이 취약해진 엄마에게 도움을 드릴 수는 있었지만 평생 책임지겠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시고 살아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하루빨리 이 감옥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결혼 후에도 의무적으로 친정에 들러 홀로 지내는 엄마를 챙겼다.


우리 집에는 오이지를 담글 때 절인 오이를 눌러놓는 넓고 묵직한 돌이 있었다. 어른인 내가 들어도 허리를 쭉 펴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그 돌은 엄마를 마주할 때마다 내 가슴팍에 날름 올라와 앉았다. 배우자가 없어 홀로 지내는 부모의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고 가까이 살면서 돌봐드려야 한다면 그 자식의 여생은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를 얹고 사는 일이다. 그 돌에 눌려 피도 통하지 않은 채 살았던 나는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기에 혹여나 홀로 남은 나의 노후를 위해 자녀를 두는 발상은 도무지 할 수 없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시가는 친정에 비해 비교적 여유가 있고 노후 대비가 잘 돼 있지만, 시부모님은 애지중지 키운 아들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분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큰아들인 남편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주 크셨다. 한 번씩 농담처럼 키워준 대가를 받고 싶다거나, 너는 부모덕 보고 살았다며 옛이야기를 늘어놓으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기겁했고 남편에겐 일종의 족쇄였다. 나와 남편은 마치 평생 갚아도 끝이 없을 빚더미에 앉아있는 듯했다.


부모 세대가 이토록 기대하는 이유는 아마 그들도 그들 부모 세대의 기대와 보상 심리에 응답하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조부모 세대로부터 부모 세대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며 살았는지, 자식 된 도리를 하느라 얼마나 전전긍긍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가족계획을 세우기 전부터 이런 마음을 자주 먹었다.

‘나만큼은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말아야지.’

‘혹시 나도 자식에게 헛된 기대를 하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과 더불어 자녀가 결코 노후 대비책이 되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경제활동이 끝나고 제로 임금의 상태가 되었을 때 남은 노후를 자녀에게 온전히 맡기는 건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예상치 못하게 자녀가 생긴다 해도 내 노후에 털끝만치도 도움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망할 무렵 재산이 있다면 자손에게 남길 수야 있겠지만 역으로 어린 자손의 재산과 노동력을 털어먹는 건 안 될 짓이라 생각했다. 또 물려줄 재산을 담보로 효도를 받으려 한다면 그 역시 치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자녀를 갖고 싶다면 그저 낳아서 키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해도 행복해야 좋은 부모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 희생과 투자를 감내하고도 자녀를 두고 싶다면 낳는 게 맞다. 하지만 무엇도 감내하고 싶지 않고 헛된 기대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딩크를 선택하는 게 맞았다. 사람이라면 조금이나마 기대가 생기게 마련이라는 냉정한 이치는 내가 딩크를 선택하는 데 힘을 실었다.

나는 되도록 멋진 노인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 의존하느니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감당하고 언제나 말끔한 사람으로 늙고 싶다. 현시대의 노년층을 보며 연금과 자산 축적의 중요성을 깨달은 우리는 금전적인 면에서 더욱 현실적인 대비를 하려고 한다. 또한 1인 가구와 싱글이 다수를 이루게 될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노후가 그리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니어 문화와 커뮤니티가 발달하고, 복지 수준도 조금은 선진화될 시대에 나의 노후는 기대해 볼만한 미래다.


그러려면 노후 대비는 더욱 철저해야 하고, 그 대비와 계획에 추상적인 의존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랑만 줘도 모자랄 자녀에게 미래의 외로움과 누추함을 해결해 달라는 투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건대 아이는 노후 대비책이 아니다.


모카를 키운 지 일 년이 넘었다. 얼마 전 남편이 모카를 쳐다보며 지나가듯 한 말이 있다.

“우리는 얘한테 바랄 게 없어서 참 다행이야.”

기대하고 바랄 게 없어서, 그저 건강하게 자라면 그뿐인 반려견이라 다행이라는 사실에 크게 공감했다. 딩크족의 노후 대비 역시 자손에게 기대하고 바랄 것 없이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명료하면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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