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어도 어른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인터뷰) 다른 딩크족은 어떻게 살까?

by 귀리밥

어릴 적 사진 중에서 아끼던 사진이 있다. 삼촌이 우리 자매들을 놀이공원에 데려간 모습, 유치원 체육대회 날 일하러 간 엄마 대신 참여한 이모가 나를 안고 장애물 달리기를 하던 모습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아껴주던 가족들과의 몽글몽글한 추억을 그 사진들이 증명하고 있다.


삼촌, 이모는 변함없이 나를 아껴주시지만 보기만 해도 흐뭇했던 어린 조카로서의 나는 이제 세상에 없는듯하다.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면 주관이 또렷해지고 반론도 제법할 수 있게 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자손을 두고 한 마디씩 보태는 어른들도 냉랭한 분위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솔 님이 어른들과 연대하는 모습은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 세대는 물론 조부모와 살뜰하게 지내는 모

습이며, 별다른 마찰 없이 비출산을 고수하는 당당함은 그녀의 삶을 한층 성숙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내 한솔 님(32세, 여성, 작가) https://brunch.co.kr/@pinastro

남편 기환 님(32세, 남성, 회사원)


아이가 좋아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


요즘 출간 준비로 한창 바쁘시죠?

한솔 : 그러게요. 출판 원고를 준비하고 있고, 이사 준비도 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네요. 이사는 지금 사는 동네 근처 가까운 곳으로 갈 예정이고요.


제가 우연히 한솔 님의 글을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서 지금까지 연이 이어졌는데요. 글과 사진 속 일상이 보여주는 현실적이면서도 포근한 분위기를 정말 좋아해요. 그런 분위기는 자연 속에서 정겹게 살 때 비로소 뿜어져 나오는 감성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어떻게 시골살이를 하게 됐는지 그 시작이 궁금해요.

한솔 : 어려서부터 시골 외가와 가까이 지냈어요. 왕래가 워낙 잦았고 외가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던 터라 막연히 ‘나도 나중엔 시골에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남편과 연애를 오래 하면서 남편 역시 그런 제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에요. 어느 날부턴가 둘이 함께 시골에서 살자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그랬던 차에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 이직을 했고, 자연스레 시골에 신혼집을 구하면서 꿈꿔오던 시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도심에서 하지 못하는 걸 평소에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가까운 들판으로 피크닉을 가거나 나물을 캔다거나 그런 일상이요.

한솔 : 네, 맞아요. 저와 남편 둘 다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시골 생활에 매우 만족해요. 평소엔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강아지와 셋이 동네를 산책하고, 주말에는 앞산에 소풍을 가거나 근교로 나들이를 가고 그래요. 집 밖에 나간다고해서 요란하게 노는 편도 아니고요. 제가 들판에서 뭔가를 캐는 동안 남편이 강아지와 신나게 뛰어놀고 그런 날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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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살기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데, 여유가 있어 보여서 좋아요. 그럼 한솔 님 부부는 결혼 전에 시골 생활을 계획한 것처럼 가족계획도 미리 세우셨나요?

한솔 : 네. 저희 부부는 연애를 5년 조금 넘게 했는데 그동안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아주 자세한 이야기까지 나눴는데 저희는 둘 다 아이를 아주 좋아해서 아이를 안 낳기로 했어요.


네? 아이를 좋아해서 안 낳는다고요?

한솔 : 저희 둘 다 아이라면 정말 껌뻑 죽어요. 친구들 아이나 조카를 보면 눈에 꿀이 넘쳐흐르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떻게 키울까, 어떤 방식으로 육아를 해야 할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아이와 관련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떠오를 때마다 토론하듯 의견을 주고받았죠. 예를 들면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면? 반대로 학교폭력 가해자라면? 혹은 성소수자라면? 이런 부분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했어요.


정말 세밀하시네요. 저는 성소수자나 몸이 건강하지 못한 자녀에 관한 논의는 해봤지만 학교폭력은 생각도 못했네요. 하지만 그런 상상도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런 세세한 고민 없이 낳는 경우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한솔 : 맞아요. 아주 자세히 의견을 교류하면서 저와 남편의 행복 못지않게 자녀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행복이 최우선인 거죠. 그런데 아이가 행복해지려면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하고 더불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소양도 상당하죠. 특히 제가 의문을 가진 부분은 주변에서 저희에게 출산을 권유하는 분들이 낳는 사람의 행복만을 말하지, 아이의 행복을 말하진 않더라고요. 사실 부모라면 아이의 행복을 중시하겠지만 출산의 이유를 설명할 때 아이의 행복을 논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 키우는 행복’을 강조하는 면이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심지어 “늙었을 때 곁에 아무도 없으면 외롭다.”, “애가 없으면 무조건 헤어진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궤변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낳은 부부가 아이를 통해 외롭지 않게 되거나 헤어짐의 상황이 다가왔을 때 망설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요? 그리고 그 아이는 행복할까요? 그런 의문이 자꾸 들었습니다.


아이의 행복 외에도 비출산 선택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한솔 : 저희 두 사람의 성향을 생각해도 아이를 안 낳는 쪽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함께 있는 시간 못지않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시간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저희 라이프스타일에 딩크가 맞는다고 느꼈죠.


그럼 두 분은 가족계획을 세우면서 의견이 불일치한 적이 별로 없겠네요. 워낙 서로를 잘 알고 닮은 점이 많으시니까요.

한솔 : 대체로 그렇죠. 다만 남편은 처음에는 아이를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저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안 갖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아이를 품고 낳아야 하는 사람은 여성이기 때문에 아내 의견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비출산을 선택하는 데 부담이 덜했죠.


이해와 연대, 그 따뜻한 온도


가족계획이 평화 그 자체네요. 그럼 다시 시골 생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한솔 님의 일상에서 보이는 또 다른 손, 바로 외할머니가 계세요. 평소 할머니와 가까이 살며 이런저런 일도 같이 하고 대화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진으로 봐서는 할머니도 음식이며 살림이며 솜씨가 굉장하신 것 같아요.

한솔 : 할머니가 동네에서 음식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세요. 그리고 제 삶에 가장 큰 영감과 영향을 주는 분이시기도 해요.


할머니 외에도 주변에 사는 어르신들과 허물없이 말도 주고받고 잘 지내시는 모습이 종종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궁금했어요. ‘어르신 세대에게 비출산을 선택한 부부가 납득이 될까?’ 하는 의문이요. 가까이 지내는 조부모님과 양가 부모님이 한솔 님 부부의 비출산의사에 어떻게 반응하셨을지 궁금하네요.

한솔 : 일단 어르신 중에 완강히 안 된다거나 반대하신 분들은 안 계세요. 시부모님은 “너희 생각이 그렇구나.” 정도로 말씀하셨고요. 엄마는 조금 아쉬워하셨어요. 저와 제 형제들이 엄마랑 정말 친구처럼 지내거든요. 엄마의 삶에선 자식이란 존재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에 저도 그 행복을 누리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조금 아쉬워하셨지만 싫은 소리는 없으셨어요.


그렇다면 조부모님은요?

한솔 : 두 분은 제게 증손주를 낳았으면 좋겠지만 안 낳는다고 해도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라며 넘어가셨어요.


조금 놀라운데요?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손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사실 많지는 않잖아요.

한솔 : 다행인지 저나 남편이나 양가 분위기가 강요와 거리가 멀어요. 자식들의 자유를 존중해 주시는 분위기고요. 그리고 저희도 완강하고 딱딱하게 말하기보다는 부드럽게 “우리 생각은 이렇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라는 식으로 돌려 말해서인지 비출산과 관련해 마찰을 빚거나 싫은 소리를 주고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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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슷한 세대라도 유자녀 가정과 무자녀 가정의 소통이 원활하지만은 않잖아요. 하물며 어르신들과 딩크족인 자손이 둥글게 지내긴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그래서 어르신들과 마찰 없이 지낼 수 있는 한솔 님 만의 요령이 있나 싶어요.

한솔 : 제게 ‘수긍하는 삶’을 말한 친구가 있어요. 자신의 의사보다 주위 시선과 환경에 수긍해 결혼, 출산, 육아의 순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삶이요. 저희 부부는 그렇게 수긍하는 삶을 원치 않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어르신들은 우리가 거부한 ‘수긍하는 삶’을 살아오신 세대잖아요. 그래서 삶의 너머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해가 가요. 이해가 가니 어르신들이 지나가듯 하시는 말씀을 잔소리로 느끼지 않고 또 다른 견해로 받아들일 수 있고, 가끔 저희 부부에게 강경하게 아이를 낳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도 기분 상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편입니다.


이렇게 평화를 추구하는 분이셨다니. 세계평화 친선 대사를 만난 기분입니다.

한솔 : 말은 이래도 저도 가끔 싫은 소리에 반박해요. 저보다는 남편이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면서 유연하게 넘어가도록 끌어주는 편이지요.


아까 주변에서 “늙었을 때 아무도 없으면 외롭다.”는 말을 들으셨다는 얘기가 있었죠. 저는 “아이가 없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딩크족이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 생각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한솔 님 부부는 후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한솔 : 그럼요. 제가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연애 단계에서 가족계획에 관해 정말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요. 후회 여부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저희 부부는 아이를 낳든 안 낳든 후회란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희 부부의 성향과 성격을 생각하면 딩크족으로 사는 편이 후회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아이가 있다면 모든 시간과 정신과 노동력을 아이에게 할애한 뒤에 저를 잃어가며 오는 후회가 있을 거라 짐작했거든요.

당장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비슷해요. 강아지가 있어서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반려견을 키우는 데도 이 정도 불편이 있는데 하물며 아이가 생기면 몇 배는 더 힘들어지겠죠.


남편분은 후회에 관해 어떤 언급이 있으셨나요?

한솔 : 남편은 저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후회의 여부에 대해 고민했더라고요. 저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라 아이가 있는 삶과 딩크의 장단점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비교했어요. 그리고 딩크족으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후회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거의 없다고 하네요.


오늘 들어본 한솔 님의 생활이 너무나 평화롭고 선량해서 마치 간디와 교황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요(웃음). 마지막으로 어떤 부부로 살고 싶으신지 바람을 들어볼게요.

한솔 : 음,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이것도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영향을 받은듯해요. 두 분은 한결같이 마을 분들과 이것저것 나눠 먹고 웃으면서 지내시거든요. 정말 보기 좋아요. 저희도 조부모님처럼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로운 시골 라이프입니다.


마을 분들과 잘 지내시는 그 모습은 저희 같은 딩크족이 나이 든 후에 겪게 될 모습 같기도 해요. 제 생각에 이십 년, 삼십 년 지난 후에는 아이 없는 부부나 싱글들이 활발하게 커뮤니티를 이룰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외로울 거란 걱정이 별로 없어요.

한솔 : 제 친구 중에도 결혼한 친구들보다 결혼 안 하려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가족의 형태와 관계없이 다같이 어울려 지낼 날이 빠르게 올 것 같아요. 저는 사실 혼자서도 잘 노는 타입이라 심심할 걱정은 해본 적이 없지만 정 심심하면 도란 님을 초대하겠습니다(웃음).

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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