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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13. 2024

모순

내 삶에는 겨자씨 심을 정도의 깊이가 있었던가.

<모순>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시기가 98년이다. 98년에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다들 공부로 바빴지만, 묘하게 나는 바쁘지 않았다. 그 시기에 많은 소설을 읽었고, 그 글들은 나를 완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고 느낀다. 양귀자의 책도 여러 권 읽었고 모순도 좋지만 그래도 으뜸으로 꼽는 건 <희망>이긴 하다.


그리고 98년에 읽은 책을 25년이 지나 다시 읽으려니 단 한 글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어렴풋한 분위기만 남아 있었다. 기억 속 <모순>은 삶이 갖고 있는 모순,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려하지만 뜻하지 않게 계속 맞닥뜨리는 모순을 천천히 은근하게 보여줬었다.


다시 만난 <모순>은 일단 나를 당황시켰다. 첫 장에 쓰여있는 문장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에서 인생과 생애는 거의 동의어인데 이게 맞는 말인가, 비문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이후 이 문장이 언급될 때도 계속 의문이었다. 그게 약간의 찜찜함으로 남은 채 독서를 이어갔다.


안진진은 그저 되는대로,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삶에 질린 것 같았다. 주변 인물들도 다 그저 그렇다. 그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직 이모뿐이다. 두 남자가 안진진을 좋아하지만 한 명은 계획표대로 살아가려 하고(마치 이모부처럼) 한 명은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한 데다 지극히 감상적이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났지만 제목이 모순이었기 때문에 결국 안진진은 인생계획표 남성을 선택할 거라 짐작은 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인물들은 천천히 자기 방식대로 모순 투성이 삶을 살아간다. 진진의 어머니는 자신을 그토록 불행하게 만든 남편과 아들을 돌보며 행복해하고, 진진은 자신이 확실히 사랑한다고 느낀 김장우 대신 의사 사랑이라 말한 나영규를 택한다.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였던 이모는 자살하고, 가난한 김장우는 자신보다 소중한 형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 진모는 보스의 삶을 바라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좁은 세상에 있기를 선호한다.


수백 번 고민하고 어떤 길을 가는 게 옳고 내게 어울리는지 알면서도 결국 그 길을 버리고야 마는 인생의 모순은 모든 인물에게 깃들어 있었으며, 우리 삶 역시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은 정말 투명하고 솔직한 제목이다. 모든 인물이 투명하게 자기 삶의 모순을 그려낸다. 이보다 더 솔직하고 적확한 제목이 어디 있을까.


책의 뒤표지 안쪽을 보니 벌써 이 책이 106쇄라고 한다. 106쇄를 찍을 만큼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목과 내용이 관통하는 솔직함 그리고 인생사가 반드시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진실을 재미있게 그려냈기 때문 아닐까. 나 역시 그 재미에 매료됐으니 말이다.


책의 띠지에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라고 쓰여 있었다. 오랜만에 접한 이 문장은 너무 슬퍼 보였다. 그런데 막상 본문으로 읽으니 꽤나 힘 있고 육중한 문장이었다. 꼭 기억해두고 싶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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