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흥미로운 소설을 꽤 오랜만에 본 것 같다. 평소 낮시간에는 그날 해야 할 일을 하고 보통은 잠들기 전 침대에서 한두 시간 책을 읽곤 하는데,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면 자는 시간이 아까워진다. 아, 조금만 더 읽고 잘까. 삼십 분 정도만 더 읽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바로 정말 재미있는 책을 만난 순간이다.
<설계자들>이 그러했다. 요즘 나오는 책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활용하기 좋게 애초에 예상을 하고 쓰이는 게 많다던데, 이 책은 영화처럼 그려지긴 해도 일부러 의도한 소설 같지 않았다. 의도하진 않았으되 캐릭터들이 눈앞에 살아 숨 쉬는 듯하고 아쉽고 아까운 장면 없이 술술 풀려나갔다.
오히려 개연성이 제일 떨어지는 건 미토가 푸주를 없애버리고 세상에 다 알리고 잡혀 들어가겠다는 각오를 했다는 점이다. 되게 구린 말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생존하긴 하나. 세상을 바꾸겠다, 잘못된 건 뒤집겠다, 이런 발언이 얼마나 하찮은지 다 안다. 그래서 미토의 사유가 너무 공감이 가지 않다 보니 그 뒤의 일들에 마음이 덜 쓰인 건 사실이다.
결국 래생이 미토를 대신해 세상을 바꾸는 시도를 한다. 요란하게 한자를 궁지로 몰아가며 자신을 노출한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대신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그 뒤에 설계자들의 세상이 알려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완전한 기승전결로 멋진 결말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지만, 그 지점까지 달려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으니 즐거움이라는 가치로 치자면 훌륭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발사와 처음 붙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너무 커서 중간에 물도 마시고 왔다.
스릴러나 추리 작품을 좋아한다. 남편은 이런 내가 무서운 얘기를 좋아해서 그런 책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무서운 얘기를 좋아하는 단순한 이유는 아니다. 스릴러, 추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에 몰입한다.
아침에 눈 뜨면 그 하루를 살고 밤에는 다시 눈을 감으며 그 하루하루가 모여 좀 더 큰 가치를 엮어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삶과 죽음을 깊이 사유해 본 날이 얼마나 있을까. 또 그 사유를 행동으로 옮겨 생생하게 피부에 접촉해 본 경험이 얼마나 될까. 서로 죽이고 살아남고 또 죽이며 내일로 이어졌던 자객들과 그 위에서 설계하는 설계자들의 구조는 모두 죽음에 몰입하는 생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또 한 명 한 명의 생이 다 귀하고 특별하고 따스해 보이는 아이러니도 담겨있다. 읽는 동안 투박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뜨겁게 몰입했다. 마치 여름휴가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