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Oct 09. 2024

재능력자_9

싫다는 감정과 분노는 반드시 결말을 만들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당신처럼 재능을 가질 확률은 아주 낮죠. 당신도 알잖아요. 그게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가질 것도 아니고 원한다고 구매가 가능한 것도 아닌데 당신은 그 재능을 온라인에 쉽게 노출하고 저렴하게 활용했습니다. 하, 가격이나 비싸게 받으면 모를까. 푼돈이나 벌고 있더군요.”

“......”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업계를 망치는 미꾸라지입니다.”

“업계. 그런 게 있다고?”

“있죠. 원래 당신은 우리 업계의 섭외대상이었어. 도무지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인지 온라인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싸구려 흥신소 일이나 하는 바람에 섭외를 철회한 거지.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야. 당신이 그러고 다니는 바람에 업계 사람들은 클라이언트 매칭과 비용 협의가 아주 곤혹스러워졌다고.”


남자는 점점 분노가 치밀어올랐는지 존대어를 포기하고 내키는 대로 화를 내더군.

“현수는 뭐야. 그 아이가 내 감정을 읽었어. 손톱은 뭐고, 납치는 무슨 소리야.”

“현수는 내가 컬렉팅한 아이야. 재능이 탁월해. 눈치도 꽤 있어. 손톱 이야기는 현수가 순식간에 지어낸 거야. 널 간 보려고 재미 삼아 해본 말이겠지.”


작은 개미인간처럼,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나는 타인들의 그림 안에서 하나의 소품이 되고 말았어. 손톱 운운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초등학생에게 속아 벌벌 떠는 게 그 증명이었지. 손발은 떨리고 치아가 딱딱 부딪혔어. 그러는 동안 남자는 텀블러에 담아온 자기 몫의 음료를 유유자적 들이켰어. 나의 떨림을 지켜보며 남자가 입을 열었어.


“사실 난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뭘 설명하고 이해시킬 필요가 없어. 내게 그럴 의무가 있던가? 하지만 용건만은 전달하도록 하지. 재능을 가져놓고 남들 뒤나 캐고 다니고 싼티나게 사는 건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너의 행보가 이 업계에서는 차려놓은 밥상에 날아드는 파리고,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불청객이야.”

“그걸 왜 당신이 정하는데? 내 인생이고, 내 능력이야.”

“집에 가보니 어때? 집 자체가 공허한 껍데기 같았겠지.”

“그쪽이 한 짓이 맞네.”

“그래, 그게 네 앞날이 되길 원해? 계속 이렇게 살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거든. 재 뿌리는 불청객은 다신 얼씬도 못 하게 내쫓아야 하고, 밥상에 날아든 파리는 약을 뿌려 죽여야 하니까.”


순식간에 나는 불청객이자 파리가 되어 있더군. 모든 물건에 알맹이가 쏙 빠진듯한 집이 떠올랐어. 물건들은 그대로인데 어째서 그 안에 담겨있던 모든 무게감이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생각했는데 내 앞날도 그렇게 되버린다면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협박이 어디 있을까?

“그걸 왜 그쪽이 정해? 치실 빨아먹고 살든, 남이 먹던 음식 먹어가며 뭘 읽든 이건 전부 내꺼야. 내 인생이고 내 앞날이야.”


내내 웃는 입모양이었던 남자는 마치 유레카를 외치듯 입과 눈을 크게 뜨고 정색했어.

“그래, 그게 바로 내가 말하는 핵심이야. 너는 니 인생 하나밖에 모르니까! 세상에 수많은 재능력자들이 분투하는 동안 너는 니 인생만 사니까! 그것마저 찌꺼기처럼 사니까! 나는 그게 정말 싫어! 싫다는 감정과 분노는 반드시 결말을 만들지! 그걸 기억하라고!”

남자는 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어. 온라인 카페 검색 화면에 내가 운영하던 상담소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 그런데 검색 화면에 아무 결과가 뜨지 않는 거야.

수요일 연재
이전 08화 재능력자_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