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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02. 2024

재능력자_8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싫습니다

급히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확연했어. 단순 의뢰가 아니었는데 먼저 쥐여주는 돈에, 아이의 순진한 얼굴에, 나는 무방비상태로 재능을 꺼내 보인 거야. 허허벌판에서 해부당한 기분이었지. 

속도위반까지 해가면서 급히 차를 몰아 집에 돌아왔어. 지문 인식 후 들어간 집은 아주 어수선하더군. 도둑 든 것처럼 요란하게 어질러놓은 건 아니지만 분명 누군가 들어와 집 안을 샅샅이 훑어 먹고 껍데기만 남기고 간 모양새였어. 


닥치는 대로 세포를 읽었어. 분명 뭔가 남아있을 테니까. 머리카락 하나, 땀 한 방울, 발각질 부스러기, 미세한 침방울이라도.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숨을 들이마시고 손으로 쥐어짜고 만지고 입에 갖다 대봤어. 그런데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거야. 누가 집에 들어왔던 건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세포가 읽히지 않았어. 공기마저 모두 뽑아간 것 같더라. 그런 적은 처음이었어.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허한 어수선함. 나를 둘러싼 세상이 열심히 일을 벌이는 동안 나만 게으르게 늘어져 있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어. 이 일의 주인공으로부터.

“의뢰는 잘 해결하고 오셨어요?”

“너 뭐 하는 인간이야.”

“허허, 저 선금도 드렸는데. 예우를 갖춰 주세요?”

“다 필요 없고, 너 뭐야. 손톱은 무슨 말이야. 현수가 나 같은 재능이 있는 거야?”

“우리 만나서 이야기할까요?”


전화 붙잡고 소리 바락바락 지르느니 못 만날 이유도 없지. 의뢰인이 말하는 장소로 나갔어. 스터디카페의 작은 룸 하나를 예약했더라고. 빚 받으러 간 빚쟁이처럼 룸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의뢰인이 앉아있었어. 지난번 만났을 때처럼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법한 흔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체를 밝혀서인지 그는 페르소나를 해제하고 왔어. 평범하고 흐릿했던 얼굴의 이목구비는 그대로인데 빛깔이 바뀌었어. 심해의 깊고 차가운 물을 얼굴에 가둔 것처럼 입가 근육은 무겁게 움직였고, 눈은 유난히 새카맸지. 이 모습이 의뢰인의 본모습이었던 거야.

“당신 뭐야, 빨리 말해.”


페르소나를 벗어서일까. 남자 입이 이렇게 컸나 싶더라. 입을 크게 옆으로 늘려 킬킬 웃더니 입 모양은 크게 바꾸지 않고 말을 하는 거야.

“아주 궁금하셨나 보네. 바로 알려드리죠. 나는 컬렉터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의 재능을 수집하고 필요한 곳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건 무슨 소린가. 이런 재능에도 컬렉터가 있다니. 전시관에 내가 박재된 채 전시되면 컬렉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데. 답답하니까 빨리 말하라고.”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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