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의뢰의 정체
잠시 멍한 사이 현수는 다시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부러 내 쪽으로 슬쩍 밀었어. 다시 한번 자기감정을 읽어보라는 듯. 등골을 타고 차가운 손길이 오르내리는 감촉이 느껴졌어. 나는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더 마셨어. 오렌지주스 병에 묻어있던 현수의 구강 내 세포조직은 다시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어.
‘아줌마 내 손톱 받으러 온 사람 아니에요??’
아이는 이미 내 존재마저 다 알고 있었어. 더는 음료를 마실 필요가 없었지.
“현수야, 너 아줌마 어떤 사람인지 알아? 손톱은 무슨 말이야?”
아이는 잠시 내 얼굴 뒤편을 보는 듯 깊은 눈망울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더라.
“아저씨가 그랬어요. 언젠가 준비가 되면 다시 데리러 온다고요. 그때 아저씨를 따라갈 마음이 있다면 제 손톱 하나를 뽑아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게 아줌마 아니에요?”
“현수야, 뭘 뽑는다고?”
“손톱이요. 내가 아저씨의 삶을 따라가겠다고 마음 먹을 땐 그 정도는 징표로 줘야 한다고 했어요.”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징표는 뭐고 뭘 따라가. 그리고 뭐가 됐든 손톱을 왜 뽑니?”
“음,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기묘했던 의뢰인의 평범함부터 아이의 이상한 반응까지, 너무 혼란스러워 의자에 앉아있는 것조차 비현실로 느껴졌지. 일단 이 상황은 수습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기묘한 아동학대 사건에 연루되고 싶진 않았거든.
“일단 현수야, 너가 아저씨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손톱을 뽑는 일 같은 건 안 해도 되고 해서도 안 돼. 그런 건 징표가 되지 않아.”
“그래요?”
“그래, 절대 해선 안 돼. 그리고 아저씨와 어떤 약속을 했는지 아줌마에게 말해줄 수 있어?”
“아저씨가 준비가 되면 날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널 왜 데리러 와?”
“내가 이 지옥에서 벗어나길 원하니까요.”
“아저씨는 너의 가족이니? 아니면 친척?”
“아니요.”
“그런데 널 데려간다고 했어?”
“네.”
“아저씨가 너한테 뭔데 따라가려고 한 거야?”
“아저씨는 미래의 내 납치범이니까요.”
“뭐라고?”
“그런데 아줌마 저 이제 수업 들어가야 해요. 그리고 아저씨에게 전해주세요. 빨리 데리러 오라고요.”
“말도 안 돼.”
그때 휴게실 창문으로 서성이는 학원 상담 선생님의 눈길이 보였어. 처음 상담 온 내가 휴게실에서 원생과 있으니 이상해 보였던 거야. 아이는 눈치껏 일어나더니 꾸벅 인사를 했어. 그리고 휴게실에서 걸어나가다 잠시 뒤를 돌더니 한 마디 남겼지.
“그런데 아줌마, 상황 수습이 됐어요? 아동학대 사건에 연루되고 싶진 않다면서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다리가 확 풀리고 말았어.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씩 번갈아 마시며 감정을 읽은 건 나만이 아니었던 거지.
“역시. 아저씨 말이 맞았네요.”
남의 학원 휴게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도 못했어. 머릿속에 담긴 모든 데이터가 몸 밖으로 쑥 빠져나간 그 느낌, 처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