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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18. 2024

재능력자_6

내 손톱 받으러 왔어요?

아이는 특별할 게 없어 보였어. 또래보다 체구가 조금 작다는 정도? 많은 아이가 그러하듯 학교를 마칠 시간이 되면 엄마가 차로 데리러 왔고, 그 차를 타고 학원에 갔지. 학원을 마칠 때도 엄마 차로 돌아갔어. 학원 차량은 이용하지 않았어. 접점이라고는 학원에 잠입하는 것뿐인데 사실 그것도 조금 난도가 있는 편이지. 그래서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을 골라 입고 아이가 학원에 가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학원에 방문했어.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로 설정해서 상담을 받았어. 이것도 여러 번 해봐서 쉽게 넘어갈 수 있었지.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둘러보겠다며 걷다가 막 등원하는 아이를 발견했어. 그때 작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

“현수야!”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데 순간 알았어. 아이가 아주 짧은 시간 얼어붙었다는 걸. 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아이의 몸이 급속냉동처럼 얼었다 풀렸어. 아이가 겁을 먹은듯해 얼른 둘러댔어.

“나 은서 엄마야. 아줌마 기억 못 해?”

아이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어. 어느 반에나 있는 은서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만 내 얼굴은 본 적이 없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지.

“아줌마 기억 못 하는구나. 그럴 수 있지. 학원 수업 온 거야?”

“네.”

“여기서 만나서 반가운데 아줌마랑 뭐라도 먹을까? 여기 학원 안에 휴게실에서 아줌마가 과자 사줄게.”


학원 안에서 먹자고 하니 마음이 좀 놓였는지 아이는 휴게실로 순순히 따라왔어. 휴게실에는 과자와 음료를 파는 자판기가 있었어. 거기서 아이가 고르는 음료와 과자를 몇 개 사서 자리에 앉았어.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단순한 감정 읽기만 기대했는데 말이야.


“현수가 고른 음료수는 맛있어? 아줌마는 토마토주스 샀는데 잘못 산 것 같아. 케찹맛이야.”

맛없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아이가 재밌었는지 슬며시 웃더라.

“아줌마 꺼 너무 맛없어서 그런데 현수가 마시는 오렌지주스 한 입만 마시면 안 될까?”


그 순간 다시 느꼈어. 아이가 얼어붙는 찰나를. 물론 어른이 자기 몫의 음료를 마시겠다는데 당황할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가 얼어붙는 모양새는 조금 달랐어. 0.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찰나에 깊숙이 다가오는 놀람, 그로 인한 사고회로의 정지. 내 말에 뭔가 이상한 게 있었나 곱씹어보는데 아이가 조용히 내 쪽으로 오렌지주스 병을 밀었어. 나는 속으로 고마워하며 한 입 마셨어.

‘내 손톱 받으러 왔어요?’

그땐 내 사고회로도 정지했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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