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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냐 Nov 13. 2022

시간여행으로의 그리기

장소, 기억, 치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러한 건지,

원래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림을 그리게 된 건지,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이미지로 혹은 어떤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박제된 순간들이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


마흔네 살인 나의 이사 기록을 뽑아보면 3장의 종이가 빽빽할 만큼의 분량이다.

어릴 적에는 친정 아빠가 군인이셔서 자주 이사를 다녔고, 결혼 후에는 미국과 캐나다, 다시 한국에서의 전셋집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민학교 때만 5번의 전학을 했으니, 매년 3월이면 난 새 동네의 새 학교 교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 많고 많은 국민학교의 교문들을 들락거렸을 텐데,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건 가장 어릴 적 1학년의 시골 동네의 학교 교문이다.

왜 일까를 이따금 생각해보지만 알 수가 없더라.


가을 운동회날, 너무도 싫은 남자아이와 꼭두각시 춤의 짝꿍을 해야 했고, 교실과 떨어진 건물의 화장실은 몹시 무서웠다. 그런데 그  1층짜리 별관 교실 건물과 그 옆의 담쟁이덩굴이 감고 있던 정자와 쨍쨍 내리쬐던 시골 햇살에 반짝이던 운동장 모래가 유독 기억이 난다.


더 크고 화려했던 서울 국민학교의 모습들은 희미하게 생각이 나는데, 제일 어렸던 1학년의 작디작은 시골 학교는 생생히 기억이 나서 머릿속에 내내 맴돌아 다니곤 한다.


그런 장면들이 몇 날 며칠을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내 눈앞에 나타나곤 할 때면, 연필과 종이 한 장이면 바로 떠날 수 있는 이 시간여행으로의 그리기 과정이 시작되곤 한다.


마치 8살의 나로 돌아가서, 저 교문 앞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오늘도 나를 위한 그리기가 시작되고, 그 과정안에서 어릴 적 나와 마주하면서 혼자 웃으며 치유로의 여정이 발을 내딛곤 한다.


어린아이들이 종이에 끄적이는 행위들과 비슷한 맥락으로의 나의 손놀림이 마흔 중반인 나를 위로해주는 시간들.


책의 글귀들과 그리기의 과정이 사람보다 더욱 나를 이해해주는 벗이 되어주니, 이 시간들이 나를 충만하게 채워서 진정 나다운 나를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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