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와 네르하의 매력은 분명히 달랐다.
네르하는 아담한 어촌의 느낌이 있었다. 말라가는 그보다는 바다가 있는 도시긴 하지만 좀 더 대도시다웠다. 네르하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겉옷만 걸치고 다녀도 괜찮다면, 말라가에서는 그렇게 하기에는 '멋쟁이'들이 너무 많았다. 또, 네르하도 맛집도 많고 했지만, 말라가만큼 가보고 싶은 카페가 거의 없었다.
우리 커플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걸 맛있는 밥을 먹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대도시인 말라가보다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말라가에서는 인생 치즈케이크를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살 수 있다면, 네르하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하며, 독일이 영하로도 떨어지는 지금 이 시점에도 이런 햇살을 맞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바다가 이렇게나 가까워 가끔 바다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파도소리를 듣는 것들로 힐링할 수 있다면, 게다가 해산물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이곳에 사는 게 독일에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렇다 보니 길을 걷다 부동산 앞을 지나갈 때면 걸음을 멈추고 집값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독일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뉴스에 나올 만큼 (물론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했다. 그렇다고 해도 절대 우리가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래를 그려보았을 때 아무래도 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여행 내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곳에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찾다 보니 스페인에서는 무려 부동산 투자이민이라는 제도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50만 유로(한국돈으로 6억 7천만 원) 이상의 부동산을 구매하면 이민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회사 동료가 시내에서 한 시간은 떨어진 곳에 70만 유로의 집을 계약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해 보였다.(물론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당장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새삼 꿈같았다. 근 30년간 한국에서만 살던 내가 잠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 좀 하다가겠다며 1년을 워킹 홀리데이로 보내고자 독일로 갑자기 날아왔다. 살다 보니, 이 삶이 마음에 들었고 회사에 입사해, 좀 더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직도 하고, 이사도 하며 독일 생활을 한지가 벌써 4년이 돼간다. 그런데 이제는 여행지에서 이곳에 정착할 방법이 있는지 생각을 해보고 있는 게, 역마살이 붙었나 재미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대견하기도 했다.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던 해외살이를 하다 보니, 다른 곳을 생각할 만큼 여유가 생겼나 싶기도 해서였다.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 나가는 동안, 여행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독일로 온 근 3-4년 만에 처음으로 바닷가를 다녀왔고, 코시국으로 인해 여행을 그리도 좋아하는 우리가 정말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기에 여행 내내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이라는 말처럼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극명하게 다른 날씨에 먼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충분히 춥겠거니 하고 대비는 했지만, 따뜻한 온탕에서 냉탕으로 들어가는 순간 온몸이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따뜻한 스페인에서 추운 독일로 들어오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이게 독일이지. 잿빛 하늘과 스산한 바람, 전형적인 독일 가을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묘하게 '그래도 집에 왔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버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독일은 안정감을 줬다. '건물들이 참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특색 없다'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독일은 참 예뻐 보였다.
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내 캐리어 주머니에 구멍이 난 줄 모르고, 집 열쇠를 넣어두면서 열쇠를 스페인 숙소에 흘리고 오게 된 걸 알았다. 스페인 숙소에 연락해 열쇠를 찾아봐달라고 요청했고, 일단은 들어가야 했기에 열쇠 수리공을 부르기로 했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옆집 아기 엄마는 마실 거든 화장실이든 뭐든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라며 친절하게 대해줬다. 애타게 기다리던 열쇠 수리공 아저씨는 오랜 시간이 되지 않아 문을 열어줬고,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금액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독일 처음 왔을 때 즈음 같은 문제가 있었지만, 나는 사기를 당해 거의 800유로 정도를 지불한 경험이 있었다. 나중에 부동산에서 그게 사기인 줄 알려줘서 그제야 알았다.)
새삼, 역시 우리가 살기에는 독일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 그리고 우리가 돌아올 곳은 이곳 우리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