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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xious Feb 02. 2021

퇴사 통보 당일

새로운 길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날, 결심의 계기가 되었던 당일의 기록

S#1. 이사님과의 마지막 퇴직 면담 (2018년 1월 19일)


  함께 일하는 사수 대리님, 같은 그룹 과장님, 옆 워킹그룹장 차장님, 우리 그룹장 부장님에 뒤이어 마침내 팀장인 이사님께도 퇴직하겠노라, 고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퇴직 통지마저 '하이라키'를 따르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다. 첫마디를 떼는 것은 어려웠지만 막상 면담 자체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사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불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꺼내지 않았고, 본래의 전공과 꿈을 좇아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임을 담백하게 밝혔다. 미리 이런저런 변명들을 준비해뒀지만 이사님은 다른 선배들과 달리 크게 묻지 않았다. 애초에 신임 이사님이 우리 팀으로 새롭게 부임하고 2주가 지났을 뿐이었다. 이사님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요. 본인 결심이 확고한 거 같은데... 언제까지 출근할 거예요?"


  그리고는 이내, 본인께서 사업부장이신 전무님에게 보고한 후에 공식적인 퇴직절차를 밟아달라고 부탁하셨다. 또 당분간은 다른 팀 팀원들에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 며칠 전 같은 사업부의 다른 대리 또한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사유로 퇴직을 밝혔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보다 훨씬 짧고 깔끔하게 끝났다. 

  

  나는 자연스레 전임 K이사님과의 면담을 떠올렸다. 연말 급하게 해외법인으로 '영전'하셨던 K이사님은 마지막 인사평가를 남겨두곤 모든 사원, 대리와 한 번씩 형식적인 면담을 하셨다. 당시 나는 표정을 포함하여 온몸으로 조직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기고만장한 막내 사원이었다. 게다가 이미 법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여 Plan B를 완성한 상태였다. 다만 아직도 최종결정을 망설이고 있었다. 마음은 대체로 기울어 있었지만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것은 퍽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달리 솔직하게 내 이야기들을 꺼냈다. 지금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 나와 비슷한 조직에서 출발하여 주니어 때부터 조직의 요직만을 거쳤으며 현재도 '잘 나가는'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분의 답변을 듣고 싶었다.


  "이사님, 지금 새벽 여섯 시에 출근을 하거나 자주 야근을 하는 것은 제게 큰 문제가 안됩니다. 예전에 말씀하셨던 A팀으로 내년이나 내후년쯤 옮기더라도 저는 좋습니다. 더 힘들어지더라도 뭔가 배울 테니까요. 저는 저만의 무기가 될 전문성을 간절히 원합니다. 단지 진급이나 사내 동기들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나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자격을 가진 이들,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금융권에서 일하는 학교 동기들 등등 어느 누구와 경쟁하더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제가 더 낫다는 그런 전문성을 빨리 키우고 싶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선 조급합니다. 이 팀에서 6개월에 1건 정도 저 스스로 만족할만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더라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와 비슷한 투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K이사의 답변을 듣고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은 네가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평판이야. B대리든 C대리든 막상 일을 시켜보면 성과는 고만고만해. 실력에는 크게 차이가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 '걔 어때?' 했을 때 너에 대해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야. 지금은 혼란스럽겠지만 사소한 업무더라도 지금처럼 (조직을) 믿고 따라오면 다 잘될 거야."


  망치로 머릴 가격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고민이 사라졌다. '이 사람의 세계는 나와 다르다.' K이사님이 평생을 바쳐 다녔던 회사는 내가 아는 회사와 다른 곳이었다. 굳이 반박하거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 면담이 있기 1년여 전부터 나는 술자리가 생길 때면 늘 선배들에게 캐묻곤 했다. 나 자신의 비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면서, 비슷한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들의 개인적인 꿈과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명확한 답은 얻지 못했다. 가족, 아내, 자녀 이외에 답변은 너무 사소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없었다. 크게 실망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근속 10년을 넘긴 과장이나 차장의 경우 이미 조직에서의 시간의 절반을 넘긴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룹의 맨 윗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우리 사업부의 위상에 대해 한참이나 열 올리며 이야기하던 한 차장님만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넌 지금 모르겠지만 인사카드에 우리 사업부 한 줄 적혀있는 게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거야. 넌 어딜 가도 우리 사업부 출신이라고. 공장이나 연구소, 영업본부에서 시작하는 애들보다 훨씬 앞서서 출발하는거야."


  이제와서는 그 선배들 한 명 한 명 모두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알고 있지만, 입밖에 꺼내지 않았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적으로는 지금도 감사하고, 좋아하며, 계속 연락하는 분들이 많다. 다만 그들의 세계는 내가 바라는 길과는 달랐다. 나와 달랐다. 


  그랬기 때문에,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단호하게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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