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영혼의 짝꿍이다.
미리 깔아놓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에디터는 무능한 존재다. 페이지 자체를 짜는 건 에디터지만, (직접 쓰기도 하지만) 글은 쓴 걸 받아와야하고, 사진은 누가 찍어줘야하며, 디자인도 남이 해줘야 한다. 일을 벌이고, 판을 짜는 사람이지만, 판에서 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판에서 노는 사람들이 장기말은 아니다.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진짜다. 진짜로 절대로 원하는 대로 안 움직인다.) 사실은 에디터의 능력은 이들의 작업물을 하나로 갈무리하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들 중, 오늘 얘기하려는 건 포토그래퍼다. 디자인은 아트 디렉터와 디자이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다. 포토그래퍼는 다르다. 뭔가 통해야 한다.
기획의도가 완벽하고, 미장셴을 기가막히게 준비해도 좋은 포토그래퍼가 준비되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여기서 '좋은 포토그래퍼'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사실 여기서 '좋다'라는 의미는 실력이 좋고 나쁘다의 의미가 아니다. 어디 감히 예술가의 실력을 논하나. 남의 분야를 평가질하는 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다. 그럼, 대체 '좋은 포토'가 뭔지, 뭘로 평가해야 하나.
간단히 말하면 '이심전심'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정확히 표현해줄 수 있는 포토그래퍼가 좋은 포토그래퍼다. 똑같이 '이렇게 이렇게 하고 싶은데요.'라고 해도 정확히 내가 생각한 그림대로, 혹은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더 마음에 드는 그림으로 뽑아주는 포토분이 있고, '아 이거 아닌데...' 싶게 뽑아내는 포토분도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실력의 차이가 아니다. 나랑 맞는 사람이냐가 중요한 거다. 연애와 같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기대에 부응해주고, 가끔씩은 서프라이즈로 감동도 시켜주는 사람이 좋은 애인이듯 포토도 내 기획을 알아주고, 원하는 그림대로, 가끔씩은 더 좋은 그림을 뽑아주는 사람이 '나한테 좋은 포토그래퍼'다. 물론 가끔씩 다른 포토랑 작업하면서 밀당도 한다.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들은 '에디터 영혼의 반쪽'을 찾는다. 선배들의 작업물을 보면 유난히 많이 하는 포토그래퍼가 있다. 매체를 옮겨도 포토는 그대로다. 꾸준히 확인하는 건 아니지만, 에디터와 포토그래퍼가 매번 겹치는 꼭지를 보면 가끔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정도면 부부 아닌가.'
여러 이유로 직접 모든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영혼의 동반자를 찾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혹은 영혼이 이미 온전한 채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서 일수도 있다. 가끔씩은 남을 믿지 못해서 직접 작업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직접 작업하는 에디터도 있고, 포토그래퍼도 있다. (에디터와 하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게 닉 나이트Nick Knight나 패트릭 드마셸리에Patrick Demarchelier같은 포토그래퍼다. 첨언하자면, 사실 내가 닉 나이트와 패트릭 드마셸리에를 좋아한다. 최애하는 작품은 아래의 것.
읽히는 기획 의도는 좀 불쾌한 게 있지만, 화보로써는 할 말이 없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강렬하고, 간결하며, 명확하게 전달된다. 게다가 아름답다. 제길, 패배했어. 나중에 꼭 우리 집에 걸어둘거다.
그래서 에디터는 포토그래퍼를 필요로 한다. 시각을 기본으로 하는 패션잡지에서 좋은 포토그래퍼가 없는 에디터는 늘 아쉬운 위치다. 패션이건 피쳐건 굳이 글만이 존재해야하는 기사가 아니라면 글로만 줄줄이 떠드는 건 독자에게 외면당하기 쉽다. 포토그래퍼도 마찬가지다. 좋은 판을 벌여줄 에디터가 없다면 맘껏 놀기 어렵다.
그래서 에디터와 포토그래퍼는 영혼의 짝꿍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 물론 내가 사진찍는 능력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