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준비, 그 간극에 대하여
삶의 선택지를 늘려가는 것을 즐겨하던 나는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했다.
“결혼”
우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른들이 당연시 여기는 결혼, 출산을 청년들이 안 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밀려 포기한 경우가 많다.
미뤄지는 취업, 쌓여있는 학자금 등 개인의 경제적 문제도 있고, 계속된 경제난, 성장의 한계에서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결혼이고 연애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소확행,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진 세대가 결혼을 통해 한 가정에 종속되고, 맞닥뜨릴 갈등이 훤히 보이는 결혼을 선택해서 또 다른 갈등을 겪을 필요가 있을까?
사회와 집단에 적응하는 것도, 버티기도 힘들어하는 요즘 세대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환경을 적응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면, 그들은 결혼을 선택할까?
이제 인간관계는 소셜 친구, 데이팅 앱, 소모임 등 자유분방하고, 가볍고,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관계 차단이 쉽고, 교체가 빠른 것도 요즘 세대의 색깔이다.
전과 같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상대에 대한 감정적인 에너지를 헌신했을 때, 상처받을 확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것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토는 누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피해 주고 피해받지 않는 오롯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여서 편하고 즐겁다고 느끼게 해 준 사람 덕에 ,
외로운 내색을 하지 않던 나에게 함께하는 삶의 행복을 알아가 보자 손을 내민 사람 덕에, 함께 여행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결혼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다가 막상 하려니까 뭐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결혼하자고 조르고 조르던 나의 남자친구는 앵무새였던가. 말만 하고 실행력은 제로다. 결국 답답한 내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친언니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 스드메는 무엇이고, 스냅은 또 무엇이며…
정보홍수 속에서 개구리 헤엄치는 기분이 느끼며, 포털 사이트에 정직하게 “결혼 준비”를 쳐보니
세상에… 결혼준비를 평균 1년 전부터 준비들을 한다? 결혼하기 위해선 MBTI가 J로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나도 ENFJ지만, 이런 계획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결혼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일생일대의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준비와 시간과 비용이 든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리스트들을 보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이것들이 정말 두 사람을 위한 준비일까?’
결혼 얘기 이후 우리 데이트의 테마는 “결혼”이었다. 결혼준비 유튜브를 함께 시청하거나, 백화점에 가서 웨딩링 구경하고, 있지도 않은 신혼집에 둘 가구, 가전들을 구경 다녔다.
사실 검색이나 둘이 알아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인들과의 약속이 생기면 대화 주제를 “결혼 준비 Q&A”로 물어가며 소스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남들의 얘기는 우리 결혼 준비에 대입하기 너무 어려웠다.
결국 그에게 “더 이상 우리 겉돌지 말고. 우선 크게 신혼집과 결혼식 장소만 고르자”라고 얘기를 꺼냈다.
역시.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끝없이 솟아오르는 집값 대란 속에 신혼집을 알아보려 청약도 해보고, 여러 동네 부동산을 다니며 구축 아파트도 둘러보고,
최후의 선택으로는 대출 없이 오피스텔에서 시작해 볼까 얘기도 해보았지만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 답을 찾지 못하고 결혼식장으로 얘기를 넘겼다.
사실 결혼식은 성당에서 하기로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크게 선택할 부분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도 역시, 판단 미스였다.
성당은 상, 하반기 추첨으로만 식을 올릴 수 있었고, 결혼식으로 인기가 많은 성당은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다.
또 성당마다 장, 단점이 있어 (언덕에 있지만 성당 내부가 성스럽다, 음식이 맛있지만 뷔페 업체가 한 군데다, 교통은 편하지만 성당이 많이 오래되었다. 등)
결혼 날짜를 잡고 날에 맞는 성당을 고를지, 원하는 성당 추첨에 맞춰 결혼 날짜를 잡을지 결정해야 했다. 결정, 결정, 결정. 결정해야 할 일 투성이었다.
누가 결혼 준비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수능보다 더 과목이 많은 거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이 갔다.
결국 우리는 신혼집과 결혼식이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하고, 결혼과 관련된 언덕(결혼과 관련된 부수적인 것들)이라도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결혼박람회를 신청했다.
우리 결혼에 대해 전문가들의 관심과 응원,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질문을 추려가며 장소로 도착했다.
입구부터 화려한 조명에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늘어져 있는 길목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다양한 스냅, 예복, 예물, 신혼여행 업체들이 테두리에 자리를 잡고 홍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한쪽에는 웨딩 플래너들이 칸칸이 앉아있는 데스크가, 정중앙에는 패션쇼 같이 무대를 설치해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해외 모델들이 워킹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지나갈 때마다 구경하라는 손짓, 가격흥정 하는 목소리,
모객 하는 눈빛들과 이를 걸러내는 눈빛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슬슬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10분 만에 구경을 포기하고, 박람회를 예약한 플래너에게 서둘러 연락했다. (플래너와의 자리 또한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는데, 무대 옆 한쪽 구석에 테이블만 모아둔 곳이었다.)
우리는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플래너는 20년 경력의 베테랑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면서 두꺼운 파일첩을 꺼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기 전에 (사실 이 자리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 주관과 맞지 않으면 서로 시간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먼저 질문을 하려 하자,
그녀는 자신이 먼저 쭉- 소개를 하겠다며 말을 가로챘다.
그녀는 예식장 종류별 비용, 스드메 패키지 비용 S급에서 ~ D급을 소개한 뒤, 내 얼굴을 보며 메이크업과 드레스를 추천했다. (그녀의 추천은 나의 취향과 하나도 안 맞았다.)
그리고 추가적인 비용 (야외 촬영, 헤어&메이크업 변형 비용, 원장&부원장&실장 비용, 드레스 추가 비용) 등 설명은 끝이 없었다.
사실 우리는 소박하고 단정하게 식을 치르고 싶어 설명이 필요 없는 내용들이 많을 것 같아 먼저 질문하려 한 것이었고, 최대한 불필요한 것을 빼달라고 하니,
업체와의 상도덕이 깨진다는 등, 절차가 안된다는 등 그녀는 흥미가 없어진 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플래너의 말에 끄덕이기만 하는 커플들, 핸드폰에 찍어온 사진으로 화기애애하게 플래너랑 대화를 나누는 커플들.
우리는 그중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보다 이 자리에 더 이상 있을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든 건, 그녀가 우리의 얘기를 듣고 핸드폰을 보며 다른 예비 신혼부부와 연락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명함도 받지 않고 그 길로 나와 곱창전골을 먹으며 느글느글한 속을 달랬다.
그날 느낀 결혼 박람회의 이미지는 신혼부부를 찍어내는 “공장” 같았다.
사실 결혼식은 보통 예식장에서 30분 밖에 하지 않는데, 그 30분을 위해 이렇게 시작하기 전부터 진을 빼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게 맞는 건가.
한 번밖에 없는 결혼이라는 큰 의식이니 잘하고 싶고, 예쁘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플래너나 이런 박람회에서 야무지게 잘 챙겨서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늘 하루, 조금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부부의 행사가 아닌 남의 행사라는 소리를 간간히 듣게 된다.
결혼이란 것이 왜 우리의 축제가 아닌, 타인의 행사가 되고, 외부 사람들에게 알리고, 면을 세우는 자리가 되었을까
왜 조금 더 화려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자리가 되었을까. 그랬으니 이런 상업적인 문화가 생긴 게 아닐까.
결혼은 뭘까.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식은 어떤 모습일까.
-1인당 평균 결혼비용 : 5198 만원 신혼여행 410 예단 666만 원 기타 552만 원 예물 737만 원 혼수 1594만 원 예식비용 1240만 원 (출처 : 한국소비자원, 2022) / 신혼집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