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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시 May 03. 2024

미들게임

“가치관을 깨부수어라.”


미들게임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스의 오프닝과 엔드게임 사이에 위치한 경기의 중반부이다.

미들게임은 체스 경기에서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국면이며, 대부분의 경기가 여기서 결정된다.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에 “결혼”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그의 확신과 나의 혼란의 가운데서 그와 나는 하나, 하나 말판을 옮기기 시작했다.


-딩크

SHE : 결혼에서 제일 크게 걸리는 부분은 “아이”였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우리는 이 부분은 통했다.

나는 노년의 꿈이 ‘세계 여행하는 허리 꼿꼿한 할머니’였다. 하지만 요즘 자식 있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되면 제2의 엄마가 되어 손주, 손녀를 보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나는 그게 누군가에게는 행복이겠지만  부담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 부담은 우리 부모님에게 주기 싫고, 자식에게도 받고 싶지 않다. 자식이 주는 행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enought!

HE : 나도 나중에 부담 없이 노년을 살다 죽고 싶다. 같이 여행하고. 둘이 의지하다 같은 날 무덤에 들어가자. 같이 노년의 준비를 많이 해두자.


-친구

SHE :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친구들에게 소개해줬을 때, 솔직히 다들 반응이 미적지근하거나 아니면 반문을 많이 들었다

“왜 사귀는 거야?”

“너, 이 사람 좋아해서 만나는 거 맞아? “

 지금 사람만큼 나의 주변인들이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를 귀여워한다. (내 주변엔 언니들이 많다.)

그를 알던 회사 사람들도 나와 사귀는 것을 알게 되고 오히려 나를 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의외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회사에서 그의 이미지는 무뚝뚝하고, 개인적인 성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와 티키타카를 하는 모습에서 의외인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고.)

어느새 그는 “성북구 최수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HE : 그녀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세다. 하지만 재밌다. 둘이 만나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참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인 것을 느꼈다. 나의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헌신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고 한다.

그리고 내 친구에게 밥을 해주는 그녀는 참 따스하고 인상 깊었다.


-생활관

SHE : 내가 자취를 하면서, 혼자 살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밖에다 에너지를 다 쏟고 집에는 널브러지더라. 하루, 이틀 늘어나는 설거지와 빨래들.

화장실에 곰팡이가 이렇게 빨리 피던가. 독립하고 불규칙한 스케줄에 집 또한 불편한 장소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올 수도 있는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피곤하지만 즐거운 긴장감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규칙적으로 집 관리를 시작했다.

함께 보내는 집은 생존수단의 “집”이 아닌 “안식처”의 대상으로 인식을 바뀌게 해 주었고, 스트레스성 탈모와 피부병을 점점 낫게 해 줬다.

HE : 대출 없이 전셋집을 구한 그녀의 생활력은 감탄스럽지만 무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나 또한 독립한 적이 없어 집안일이 어수룩하지만,

그녀의 집안일을 도와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들이 있어 기분이 좋다. 참치랑 햄, 물, 햇반 같은 것들은 내가 최저가로 검색해서 채워주고,

집에 전기가 나갔을 때 함께 해주고, 우울할 때 맛있는 걸 사가지고 들어가는 길이 참 행복하다. 이게 함께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지만 바퀴벌레는 절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가족

SHE : 나의 큰 삶의 조각. 늦둥이로 태어난 나 때문에 늦은 나이까지 살펴준 부모님께, 최대한 늦게까지 함께하며 챙겨드리고 싶었다.

근데 처음 양주 텃밭에서 아빠랑 컴퓨터 얘기를 나누더니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우리 집에 와서 내가 못 고치는 아빠 컴퓨터를 고쳐주고, 주식 얘기를 하면서 신나게 떠들고,

엄마의 김치를 맛있게 먹고 두 포기 얻어가는 저 넉살을 귀여워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아들이 있었다면 우리 부모님은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항상 내 남자친구들을 날카롭게 살피던 언니도 그를 몇 번 보더니 마음이 돌아섰다. 아마 큰 계기로는 대중교통도 끊기고 택시도 안 잡혀 집에 못 들어오는 언니와의 통화를 듣고

굳이 길을 한참 돌아 언니와 함께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좋은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한달음에 달려오는 그를 보며,

“착하네.”라는 말로 합격점을 주고, 무심한 듯 툭, 그를 뒤에서 응원해 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싫어하지만 조카들과 함께 놀아주며 실시간 지쳐가는 그의 모습은 참… 고맙고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HE : 사귄 지 1년도 채 안되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에게 짧게만 연락했는데, 대중교통도 없는 장례식까지 퇴근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그녀.

처음 보는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어른들에게도 살뜰하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고, 잠시 그녀를 챙겨주고 오라는 부모님의 말에 밥 먹자며 삼계탕 집에 가 몇 숟갈 뜨자마자…

내 손을 잡는 그녀를 보고 목놓아 울었다. 5살의 나처럼. 그런 나를 달래며 함께 눈물을 닦는 그녀를 어떻게 놓칠까.

그리고 가족이 적어 정을 크게 경험할 일이 없었는데, 살갑게 챙겨주는 그녀의 어머니와 위트 있게 농담하며 조언해 주는 아버지,

그리고 동생을 아끼는 누나의 모습을 보며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어머니가 자식들이나 그녀의 형부에게

“가브리엘~”, “수산나야~”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듣고, 그녀가 모태신앙 (천주교)인 것을 알았고,

예비신자 등록을 그녀 몰래, 매주 금요일 퇴근하고, 3시간 동안 교리를 들으며 가족들에게 불릴 나의 세례명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는 서로 수를 모두 보여줬다.


 체스의 승리조건을 “왕을 잡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히는 “포위한다”에 가깝다.

왕이 잡히기 직전의 상황인 체크메이트가 발생했을 때 체스라는 게임은 끝나는 것이며, 체크메이트가 발생하면 당한 쪽이 악수를 청하며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다.

그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그리고 그와 깊은 서로의 얘기를, 새로운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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