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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시 Apr 22. 2024

진입장벽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


“딩크? “


 둘이 처음 식사하는 자리에서의 대화 주제다.

그와 나는 알고 지내듯 모르고 지내듯 8년의 시간 동안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고, 어디로 발령 나고 진급하고 정도의 소식은 서로 알고 있었다.

대화는 스무고개 하듯이 어렴풋한 과거의 퍼즐을 맞추어 나갔다.


“제일 오래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이랑 왜 헤어졌어? 지금은 결혼 생각이 있어?”

“상대들이 결혼하고 싶어 했는데, 그땐 내가 생각이 없었어. 지금은 누구 만나면 결혼은 생각해 볼까 하는데… 좀 망설여지는 게 있어.”

“뭐?”

“내가 딩크여서…”

“어?”


외동아들에다가 아버지까지 독자인 집안이라 사회통념상 당연히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갑자기 관계의 스팩트럼이 확 넓혀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비혼주의자이지만, 혹 오래 만나게 될 연인이 청혼을 한다면… 정말 결혼을 원한다면 하나는 단호하게 말할 거다. “아이는 절대.”)


취미생활은? 그냥 가만히 있는 거 좋아해.

나도. 산책하거나 여행 다니는 건 좋아. 오, 나는 여행 좋아하는데 많이 다녀보진 않았어.

바삭바삭한 돈가스가 맛있어서 기분이 좋은 건지, 그와 맞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건지, 식사시간은 꽤 흥미로웠다.


그와 나의 공통점은 꽤 많았다.

-일주일 중 혼자 있는 날이 필요하다.(나와 그)

-여행을 좋아해 많이 다녔다. (나), 여행은 몇 번 안 가봤지만 나쁘진 않다. (그)

-웬만해서 필요한 게 아니면 삼세번 고민해 보고 산다. (나와 그)

-주식은 한식 (나와 그)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회와 해산물 러버 (나), 고기 파지만 해산물 좋아(그)

-모태신앙 천주교, 하지만 지금은 냉담자(나), 무교 강압적인 종교 빼고는 괜찮아.(그)


 이 정도면 꽤 잘 맞는 거 아닌가. 우리 또래에 제일 크게 갈등이 생기는 경제관념이나 내게 기본이고 중요한 먹는 것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정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성향이면 데이트 장소를 서치 할 때 서로 힘든 일도 없을 것 같다.


 둘 다 전 연인과 성향이 반대인 걸로 힘들어해서 그런지 서로 맞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하이파이브까지 해가며 신나 했다.

나는 지난 연애 기간 동안 그 좋아하는 회를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게 바람이었지만, 감자샐러드만 먹다 마는 사람 앞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삼세번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소비습관을 가진 나와 반대로 한 번에 크게 지르는 상대의 소비습관이, 그렇게 받은 선물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됐다.

그는 술자리는 되도록 적은 인원에 편한 자리를 선호했지만, 전 연인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밤마다 잠 못 들고 전전긍긍했던 부분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다행히 서로에게서 그런 부분들이 보이지 않으니 서로가 더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몇 번의 데이트를 통해 취향이 어느 정도 닮음을 알아냈고,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한 뒤

연인의 관계로 접어들었다.



 20대 때는 그 어떤 상대를 만나도 맞춰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유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상대를 좀 더 배려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련한 생각이었다. 나의 자아는 미약하지만 구축이 되어있었다. 단지 이것이 내가 좋고, 싫고를 느끼게 할 만큼의 대상이 없었을 뿐이다. 섣부른 배려를 하려 한 것이다.

연애는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깊게 만나보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화를 내는 나, 억지 부리는 나, 울부짖는 나, 구질구질한 나.

맞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이해하려다 보니,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바꾸려고 하다 보니 피 터지는 감정싸움이 발생했다.  


 그렇게 치열한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니 억지로도 싫고, 부딪히는 것도 싫고, 다 싫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어떤 나를 보여줘야 할지, 보여준 내가 상대와 맞지 않을까 걱정부터 돼 연애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다시 서로를 질기게 씹어대는 단 물 빠진 풍선껌 같은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있어도 안 되겠는 요소를 발견하자마자 마음을 차단했다. 정이 들지 않기 위해.


색이 짙어져만 가는 인생 속에 누군가와 섞인다는 건, 참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길에 나는 또 발을 들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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