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완벽한 사랑도 없다.”
“모자란 두 사람이 만나 완벽한 하나의 결실을 맺게 됨을 하객 여러분들 앞에 선포합니다.”
나는 결혼식장에 가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오늘의 주인공들에게 축하와 응원을 동시에 보낸다.
뒤풀이 자리. 맥주와 안주는 신랑 신부의 연애 얘기 그리고 각자의 연애 근황. 내가 최근에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니 다들 반문을 했다.
“네가?” “괜찮겠어?” “남자는 결혼을 생각 안 한대??”
왜 한국의 연애 얘기는 기승전 결혼일까. 남들의 이런 질문만 아니면 우리는 평탄한 연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뒤엉킨다.
과연 둘이 합친다고 완벽해질까? 나는 아닐 거 같다. 둘이 합치면 힘이야 생기겠지만, 힘이 생기기까지의 서로의 합일점 발견 과정이 너무도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결혼에 현명하지 못해 이렇게 들러리로서 축하와 박수를 보내니, 부디 그대들은 현명한 결혼생활을 영위하시고 슬기롭게 이 세상을 헤쳐나가길.
“우리는 결혼하면 어떨까?”
“푸웁!! 갑자기?”
1년도 연애하지 않았는데,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솔직히 이 사람이라면 서로의 개인적인 부분을 잘 지켜주고 형식적인 부담을 줄 것 같아 오래오래 연애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은 얘기가 다르다.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다. 본인의 인간관계 능력 수준과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결혼을 통해 최고로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고, 또 정반대로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현세대는 경제사회다. 현대 사회의 결혼은 상대의 조건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서로의 조건만 보게 되는가. 아니다. 집안 간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가 없다.
결혼은 둘이 하는 게 아니라 집안 대 집안으로 하는 거사다. 결혼은 법적으로 묶이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온 가족이 상대 가족이나 사위, 며느리감에 대해 신중히, 이것저것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맞지 않는 분위기가 생기면 파혼이나, 이혼까지도 갈 수 있다. 고부 갈등으로 카운슬링이나 연구사례가 계속 늘어나는 것 보면 이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결혼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들을 열거해 보면 … 끝도 없이 나오게 된다. 오죽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서조차도 세계에서 결혼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할까.
단순히 이 사람이 좋아서,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은 너무 본인의 남은 생에 대한 무책임한 생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골치 아픈 이 얘기들을 구구절절 그에게 늘어놓고 싶지 않아 처음엔 그를 여러 방법으로 설득했다.
“나는 비혼주의자라고 말했던 거 같다.”, “몇 년 더 만나보면 확실해질 것 같아.”, “지금의 관계도 나쁘지 않지 않아?”
그도 나를 설득했다. “너랑 하는 결혼은 뭔가 다를 것 같아.”, “몇 년 더 알아봐도 우린 같을 거 같은데? 이것보다 어떤 확실함을 바라는 거야? “,
“지금보다 더, 더 함께하고, 사랑받고, 주변에 인정받고 싶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말투와 행동, 눈빛은 참… 나를 많이 흔들었다.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이랄까. (하지만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 귀여운 눈 뒤에 성격을)
나는 그에게 한풀 꺾인 채로 생각을 해보기로 하고 얘기를 미뤄내기를 몇 번,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기점에 와있음을 직감했다.
사실 이전부터 그가 우리 관계에 ”결혼“이란 단어를 내게 뱉은 순간부터 나의 경보 레이더에 전원이 들어왔었다.
나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보던 그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배울 점이 있고 진취적인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바랐다.
하지만 그는? 발령 난 직군에서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 얼굴이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고, 매일 흐르는 다크서클로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은? 없다. 일은 그냥 돈벌이의 수단일 뿐. 일 외의 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 안정적인 게 우선순위가 된 사람이었다.
(나는 일과 개인의 시간이 분리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일이 좋으면 그게 곧 일상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과거 내가 처음에 호감을 갖았던 그의 모습은 일에 흥미로움을 갖고 열중하던 그의 모습이었을 뿐,
현재는 고사리처럼 삶아져 사회가 부여한 “업”이란 무게에 눌려 무기력해져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같이 욕도 해주고, 내가 더 씩씩해져야 했다. 거의 1년은 멘털 테라피스트가 된 느낌이었다.
솔직히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해서… 연인에게만큼은 기대고 싶은 게 컸는데…
결국 이번 생의 나의 포지션은 이것인가.
솔직히 그는 나에게 레이더를 안 켰을까? 나만 이렇게 예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도 진짜, 진짜 자기는 나한테 불만이 없어? 내가 하는 게 다 마음에 들어? 100% 만족이야? 자기도 이상적인 아내상 있을 거 아니야.”
“진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자기를 보면서 ‘이런 여자랑 결혼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단단하고 멋진 여성.
근데 나한테는 실수 투성이인 모습 보이고, 남들 앞에서는 이성적 인척 하면서 내 앞에서 감정적이고, 똑똑한 척하는데 컴맹인 것도 귀엽고.
근데 그런 건 내가 해줄 수 있으니까. 우린 천생연분 같아. “
고단수다. 예쁘게 말하면서 나를 돌려깐다.
나의 “욕심”과 “욕구”가 좋은 사람이 다가올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놓고 있지 않았나. 뭔가 약하고 여려 보이기만 하던 그에게 바위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는 나에게서 안정감과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나의 마음을 먼저 발견한 거 같았다.
그렇게 나에 대한 마음이 바위처럼 단단해진 그를 나는, “외적 이상형”이라던지 “경제력”, ”일에 대한 소신“, ”명예“ 이런 한주먹 계란 같은 거리들로 계속 던지고 있었다.
결과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누군가와 평생을 해보고 싶은데 그게 망설여진다면 한 번쯤은 그 사람과 솔직한 시간을 친한 친구와 얘기하듯 꾸밈없이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어떤 삶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보았을 때 화가, 짜증이 나는지, 언제 편안해지는지, 행복해지는지. 같이 살아나간다면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부분은 어떤 게 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등. 위 질문 그대로 상대에게도 묻고. 그 대화가 유연하고 의미 있게 흘러간다면 이 험난한 세상, 꽤 든든한 동반자로 옆에 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말이 안 통하고 싸움으로 번진다? 본인의 인생이 소중하다면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평생 괜찮은 척, 나이스 한 척하다가 제 명에 못 산다. 나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이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당신의 시간, 관심, 사랑, 그리고 당신의 걱정이다." - Joel Ost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