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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시 May 10. 2024

브레이크 타임

결혼준비에도 “쉼”이 필요하다.


 결혼준비자들이여, 심신이 지쳤는가.

‘현실적 문제와 복잡한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 이 결혼을 왜 하려고 했었나.’라는 마음이 들 때,

즐거웠던 둘의 과거를 풍선껌처럼 꺼내 질겅질겅 씹어보라.


- 사귀기도 전에 그에게 설렌 게 있다면, 거침없고 해맑은 거? 

: 내 수술 얘기하다가 덥석 수술 부위인 골반을 냉큼 만져보고 본인도 놀라 눈이 동그래지고, 가구점에 들어가 침대에 벌컥 누워 옆에 누워보라며 해맑게 웃던 모습.

무슨 얘기든 호탕하게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 나를 슬쩍슬쩍 보는데 티 나는 어수룩함?


- 초반에 우리가 부딪힌 부분은?

: 벌어지지 않은 상황과 감정까지 고민하는 나와 다르게 감정은 배제하고, 앞에 벌어진 고민만 하는 그와의 미래에 대한 가치관 충돌.

결국 그 부딪힘은 현재, 각자의 일에 대해 책임감 가지고, 각자의 평판은 곧 서로의 평판이 되는 사이니, 서로 누구에게 피해 주지 말고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미래, 나는 깊은 걱정을 줄여나가고, 그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서로 요구해서 하는 부분이 아니다. 함께 지내고 물드는 부분이 있다 보니, 변화된 부분이다.


- 그에게 마음이 열린 순간이 있다면?

: 사귄 지 1년도 채 안 됐을 때, 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는 의젓하게 조문객 맞이하고 나와도 멋쩍게 인사하던 그.

계속 밥을 안 먹었다고 밥 좀 챙겨 먹이고 오라는 그의 부모님의 말에 우리 둘은 장례식장을 벗어나 오래된 삼계탕 집에 갔다. 몇 숟갈 뜨지도 못하는 그의 손을 잡으며

“괜찮아, 할머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라고 하자,

할머니 손에 자랐던 5살 어린아이로 돌아가 참았던 울음을 마음 놓고 터트리던 그, 그 여린 마음을 본 후로 볼 때마다 품이 가고, 마음이 갔다.

연인이 생긴다면 동경하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던 나의 마음이, 그를 보며 서로 숨기는 거 없이 같이 울고 웃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바뀌게 됐다.  

: 함께 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열린 것은 여행 스타일이 맞는 게 컸다.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황금의 순간이다. 이때마다 나는 꼭 외지로 가서 타인의 삶을 살며 1년 간의 삶에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풀고 온다.

외부인이 되어 남의 일상을 구경하고, 나에 대해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그 순간을 온전히 갖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누군가 동행하는 여행은 그 사색의 시간을 갖기 어렵고, 여행 스타일이마저 다르면 그 시간을 나눠줘야 하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그와의 여행은 달랐다.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예약”인다. 유심부터 시작해서, 호텔, 항공 등 전자기기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쥐약이다. 이것 때문에 가기 전부터 진이 빠지는데,

그는 웹서치에 능통하고 전자기기를 잘 다뤄서 E-티켓이든 어디서든 휴대폰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반면, 그는 외국 여행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고, 효율적이지 못해 동선이나 여행 포인트를 잡기 어려워했는데, 이건 내 전문분야였다.

사색의 시간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행의 취향은 비슷했기에 우리는 함께 걷고, 그 나라의 일상을 함께 구경했다. “가만히”가 통하는 우리였다.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의 표정이나 일상을 구경하며 우리의 일상을 그려보는 건 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만나는 동안 1년에 한 번씩 해외를 나가고 있는데, 두 번다 너무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나라마다 훌륭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피부병도 훌륭한 에피소드 중 하나지.)

종종 지나가며 이방인들을 반기는 미소는 우리 사이를 더 돈독하게 해 줬다.


- 그와 결혼할 확신이 든 순간은?

: 아무래도 가족이 컸던 것 같다. 장례식에서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후, 명절 때마다 서로의 부모님에게 선물이나 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부모님 각자 취향도 다르시고 매번 선물거리는 찾는 것도 일인 것 같아, 그다음 해부터는 서로의 부모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걸로 바꿨다.

어려운 자리긴 했지만,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그의 따뜻하고 순한 모습이 어디서 나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부담 가질까 봐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보며

‘정말 나를 딸처럼 보시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우리 부모님과 더 자주 봤다. 엄마와는 서울집에 종종 놀러 오며 머물며 맥주 친구로 이미 단짝이 되었고, 시골에 계신 아빠를 보러 가는 길은 최소 2박은 머물러야 했다.

아빠는 나에게 부탁할 수 없었던 전자기기 업그레이드는 그에게 맡기면 몇 분만에 주문을 하거나 해결이 되는 것에 탄성을 질렀다.

아빠가 근래 들뜨고 카톡에 이모티콘을 붙이는 일은 그와 대화할 때, 그가 아빠에게 새로운 기계를 사줄 때인 것 같다. (남자는 결국 로봇에서, 자동차, 전자기기인 건가.)

그리고 나에 대한 한결같은 그의 확신이 나의 불확신보다 컸기에, 내가 이렇게 그에게 빠지지 않았나.




 결혼준비를 하면서 많이들 싸운다고 한다.

연애와 결혼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진지함”이다. 여태까지 서로에게 진지한 일도 없었고, 우리만을 위한 중대사를 치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혼”은 공식적으로 남들 앞에서 부부가 됨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결혼식”이니만큼

선택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예민해지게 된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환경으로 맞춰야 하니 그것도 어려운 일이고,

가족이나 주변의 의견과 개입도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포기하자. 완벽을 포기하자. 인생이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결혼 또한 완벽하지 못할 것이다.

이 순간은 상대에 대한 많은 이해가 필요한 순간이고, 배려를 통해 함께 행복할 부분을 찾아나가자.

이해를 하려면 그를 더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와 함께 했던, 그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들을 굳이 끄집어내자. 끄집어내면 대화가 나올 것이다.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닌, “우리”가 되기 위한 선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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