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정해진 규칙이란 건 없다.”
<상견례 장소 : 마전동 왕자님 마당>
2024/05/04 토요일, 날씨 : 다행히 맑음
약 두 달 전, 병원 로비에서 어른끼리 나눈 약속이 이뤄지는 날이다.
“다음에 저희 집에서 편하게 대접하고 싶습니다.”
왕자님 집에서의 가족들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날.
그의 부모님들은 몇 주 전부터 시시각각 바뀌는 일기예보를 보시며, ‘토요일만 제발 맑아라, 토요일은 맑아야 한다.’를 말씀하시던 날.
언니 : “왕자님 집에서 상견례를 한다고? 헐”
나와 그의 주변인들 : “집에서 상견례를??”
상견례 장소는 보통 한, 두 달 전 양쪽 식구들의 식성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음식점을 선택하여 예약하고,
당일 날 미리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선물을 준비하고, 가족들끼리 인사를 나누도록 하고 소개를 한 뒤, 결혼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다.
하지만 우리는 설레는 포인트가 조금은 다르지만 소풍 가기 전 가방을 싸는 기분으로 상견례를 준비했다.
왕자님은 상견례하기 전에 부모님과 장을 보며 우리 가족의 식성이나 조카들을 위한 간식을 사시고, 왕자님의 아버지는 고기를 맛있게 굽겠다는 큰 사명감 아래,
직접 신당 주방 시장에 가셔서 숯불갈비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원형 고기 테이블을 구입해 오셨다. (성능 테스트를 위해, 왕자님은 한동안 고기를 원 없이 먹었다고 한다.)
우리 집은 과일 여러 종류와 아버지가 시골에서 사 온 소곡주, 밭에서 따온 야채들을 선물로 챙기고, 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1학년인 딸에게
왕자님네 집안은 아이가 많지 않은 집안이니 정신없게 하지 말고 조용히 얌전히 앉아서 인사를 꼬박꼬박 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12시 점심 약속. 차 안에서 언니네 식구들과 이렇게 상견례를 하게 된 얘기를 나누며 긴장된 마음을 누르며 가다 보니 금세 왕자님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왕자님 가족들과 이모님이 마중을 나왔고, 우리 가족들과 왕자님 가족, 언니네 식구 11명은 서로 집 앞에 모였다.
‘인사를 먼저 해야 하나? 소개를 먼저 해야 하나?‘ 왕자님과 내가 계속 눈빛을 교환하며 사인을 보내고 있는 사이, 왕자님 병문안에서 만난 이모와 양쪽 부모님들은 알아서 반갑게 인사하시고,
우리 부모님이 언니네 부부와 아이들을 소개했다. 뒤늦게 우리도 다시 한번 가족들을 소개하다가, 결국은 각자 어우러져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조카들은 언니에게 오기 전에 정신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평소 비글 같은 모습은 숨긴 채 얌전히 배꼽인사로 어른들의 인사에 답했다.
고기를 굽는 자리. 엄마들과 이모님은 주방에서 서로 재배한 야채로 겉절이와 재료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언니네 부부는 고기를 굽고 아버지끼리는 농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왕자님과 내가 계획한 자리 배치, 대화 순서, 분위기 리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잔디밭을 보자마자 공을 들고 마당으로 뛰어 나가 공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참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장면들이었다.
고기를 먹으며 결혼에 대한 얘기보다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중간중간 우리들 관계에 대한 좋은 말씀, 칭찬을 해주셨고 우리는 긴장이 풀린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며 소화를 시키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먹으며 본인들만의 얘기를 나누시고 모두 함께 뒷정리를 했다.
식당을 예약했으면, 1시간 안으로 끝났을 상견례는 4시까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혼을 약속하고, 준비를 해나가며 많은 것들을 검색해 보고 많은 얘기들을 들으며 느꼈다.
한국의 결혼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보다 결혼 준비에 남들의 시선과 체면이 많이 개입된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둘을 위한 결혼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스스로 준비하자고 했다. 그러면 아쉬운 부분이 생겨도 우리의 서투른 추억으로 남지, 누군가를 원망할 일은 없을 거니까.
양쪽 부모님들과 혼수, 예물, 예단 이런 것들은 바라지도, 주시지도, 오가지도 않기로 했다.
그저 너희들의 새로운 인생을 꾸려가는 모습이니 재밌게 구경해 보시겠다는 입장들이시다. 그게 양쪽 다 같은 마음이어서 우리는 행복했다.
상견례 자리에선 지켜야 할 많은 예절이 있다.
이러한 예절이 있다는 것은 예비 신랑과 신부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집안끼리 서로 인사를 하며 결혼을 허락받은 공식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예절이란 서로 가족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기 위한 게 주목적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예절이고 절차나 관습, 이런 건 지나치게 의식하며 차릴 필요가 없다.
그냥 새로운 가족이 돼서 반갑다는 마음, 두 예비부부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이 보이면 그만한 상견례가 어디 있겠나.
누구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상견례를 마치고 따뜻하게 저무는 노을을 바라본다.
저 따뜻한 햇살아래, 기존의 가정 아래서 새로운 가정이 태어남을 환영하는 가정의 달 5월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