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정해진 순서란 없다.”
부재중 전화 1통.
“어디야… 잠깐 집 앞으로 나와줄 수 있어?”
“나 다리가 부러진 거 같아. “
2024/02/23일. 출근을 하던 왕자님의 다리가 부러졌다. 정확히 옥수동 성당에서 결혼식 날을 잡은 지 일주일 후의 일이다.
아직은 추운 2월 말. 키가 커서 바닥을 잘 보고 다니지 않는다던 그는 미처 블랙 아이스를 발견 못하고 넘어졌고,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아 나에게 S.O.S를 쳤다.
나는 오후 출근이라 한참 잠에 빠져있었고, 그의 모닝콜인가 싶어 한번은 무시했는데 사람의 촉이 이렇게 무섭다. 두 번째엔 싸해진 기분으로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갔다.
골목길로 방향을 트는 모서리 벽에 간신히 등을 기대고 있는 그를 보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눈물이 안 난다던데 실제로 그랬다.
살아오면서 항상 그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성격이라, ‘이러다간…’이라는 가정을 삼으며 사고를 예상하고 피해 가거나, 벌어진 사고를 해결해 나갔는데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큰 사고는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나의 측근에게 벌어진 일은 더더욱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삐용삐용-.
다음을 생각할 경황이 없다. 하얘진 얼굴로 다리도 못 편채 구급차에 누워있는 그와 나의 눈은 내비게이션만 귀는 구급대원의 통화에 열려있을 뿐.
뇌는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의료파업이라 바로 앞에 있는 대학병원을 지나쳐 몇 번의 통화 끝에 동대문에 있는 국립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부모님한테 전화 좀…”
아직 그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선은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달라는 그의 부탁에 그의 부모님에게 아침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일어나셨어요? 늦게 퇴근하셨을 텐데… 아침부터 죄송해요. 영준이가 출근길에 넘어졌는데, 다리가 부러진 거 같아서요. 네, 지금 응급실에 가고 있어요.”
“엄마…. 아 영준이 다리가 부러졌나 봐. 일어나질 못해. (흑흡) 일단 OO 응급실로 가고 있어.”
심장이 쇄골까지 올라온 상태로 들것에 실려가는 그를 쫓아가다 응급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제지당하고, 수없이 눈을 깜빡이며 떨리는 다리로 의자에 앉았다.
20분…30분…40분… 택시를 타고 달려온 엄마는 오자마자 차게 얼은 표정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1시간 뒤. 그의 부모님이 응급실에 도착했다.
양주에서 여기 응급실까지 평일 출근길이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길을 1시간 조금 넘어서 도착하셨으니, 얼마나 애가 타는 마음으로 달려오셨을지 시간에서 느껴졌다.
누구보다 제일 놀란 표정과 붉게 충혈된 어머니 눈을 보자마자, 엄마가 나의 손을 잡아준 것처럼 다가가 그의 어머니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잠깐의 이성이 돌아왔다.
“아, 여기는 저희 어머니세요. 엄마, 마전동 왕자님(가칭) 부모님이셔요.”
“아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너무 놀라셨죠.”
“어이구, 어머니까지 와주시고. 감사합니다. “
“이게 무슨 일이래요.”
“그러니까요.”
“마전동 왕자님(가칭) 보호자 분~”
(모두 동시에) “네!”
그는 정확히 오른쪽 정강이 두꺼운 뼈가 사선으로 부러졌다. (의사가 부러져도 어떻게 이렇게 안 좋게 부러질 수 있냐고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꽤 넓은 부위로 수술이 필요하지만, 금요일이고 의료 파업 중이라 당장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입원부터 진행을 하자는 병원 측의 의견대로 입원서류를 작성하고
입원 관련 안내문을 받아 들고 네 사람은 얼떨떨한 모양새로 응급실을 나왔다. 그렇게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또 잠깐의 이성이 돌아왔다.
“아침식사 못하셨죠?”
상견례는 예비 신랑・신부의 양가 부모들이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이다. 상견례 만남 이전에 양가에서는 어느 정도의 혼인승낙이 이루어지고, 그 후에 상견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상견례 자리에서 양가 부모님의 합의에 따른 최종 혼인승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의외로 상견례 자리에서 결혼승낙을 재고하거나 성사가 안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예비 신랑・신부는 상견례를 세심하게 준비하고, 양가 부모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참고문헌 :서울 사람들의 혼인, 혼례, 결혼(박혜인,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혼인준비자들의 혼례예절교육 요구도 연구(주영애, 한국가정관리학회지 31-6, 한국가정관리학회, 2013).
그의 부모님과 나의 엄마는 그렇게 첫 만남을 응급실에서, 첫 식사를 해장국집에서 하게 되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아들을 너무 잘 챙겨주신다고. 너무 감사합니다.”
“어휴, 아니에요~ 너무 아이가 살가워서. 출퇴근이 너무 머니까, 늦게 일 끝나면 저녁도 먹이고 싶고 그렇게 보다 보니 저도 아들 하나 생긴 것 같고 즐거워요.”
“따님을 너무 잘 키우셨어요. 어쩜 이리 이쁘고 마음씨 착하게. 어머니 닮아서 그런가 봐요.”
“호호호”
내가 낄 틈이 없다. 그래도 부모님과 작년부터 명절에 밥을 먹고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눈 게 다행이었다. 부모님들은 우리들에게 들은 서로의 부모님의 얘기를 기억해 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 집 시골 살림하는 얘기, 그의 부모님 장사하는 얘기, 자신의 아들과 딸 얘기, 그리고 당신들이 바라본 상대 자식들의 대한 얘기, 그리고 우리 둘의 얘기.
어머니들은 모두 화장기 하나 없이, 스킨로션 바르지도 않은 맨 얼굴로 좀 전의 슬퍼하던 표정들은 미뤄두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엄마는 식사 후 그의 부모님에게 병원이 그래도 우리 집에서 멀지 않으니 차라도 드시고 마음 좀 풀고 가시라고 했고, 그의 부모님에게 우리 집까지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수술 당일 날. 퇴근 후 그에게 갔는데 수술 전부터 그의 부모님과 이모, 우리 엄마 세 분이 병원에서 만나 그의 수술 시간 동안 카페에서 함께 기다리고,
수술 후 그를 본 뒤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서 얘기를 나누다 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침대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그와 그의 부모님, 나와 우리 부모님 모두 병원 1층 로비에 나란히 앉아 정말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예비 신랑・신부는 처음 맞이하는 상견례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나 교육기회 등이 없으므로, 양가가 처음 대면하는 자리를 부담스럽게 인식하기도 한다.
상견례는 일반적으로 호텔이나 한정식집, 또는 고급 일식집・중식당・양식당등 조용한 분위기의 장소에 이루어진다. -참고문헌 :위와 동일)
아빠 : “아이들이 날을 잡았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그 아버지 : “저희는 아이들의 결혼이니 얘들이 하자는 대로 맞출 거라 다 상관없습니다. 성당은 저희도 가보지 않았지만, 성스럽게 치르니 좋죠.”
엄마 : “저희 집안은 모태신앙인데. 무교라고 들었는데, 다니엘(마전동 왕자님의 세례명)이 갑자기 세례를 받아와서. 고맙고도 놀랐어요.”
그 어머니 : “생전 저희한테는 그런 성의를 안 보이는데. 원체 좋아하나 봐요.”
아버지들이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들을 나누면, 어머니들은 데코 담당이라고 할까. 뭔가 분위기를 풀어주고 꾸며주는 역할을 하셨다.
편한 청바지 차림들에, 과일 몇 점과 음료수, 딱딱한 병원 로비 의자.
“애가 퇴원하면, 나중에 저희 집에서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저희 아들을 너무 잘 챙겨주셔서.”
“같은 자식인걸요.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부담 아니에요. 정말 감사하고, 따님분도 너무 예뻐서. 나중에 정말 퇴원하면 집에 꼭 와주세요. “
“그럼 그때도 편하게 청바지 입고 만나시죠.”
“좋지요! 너무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