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느끼는 멕시코의 계절
멕시코에는 사계절이 없다. 북부에 솜잠바를 껴입어야 하는 추운 지역도 있고 남부 해변가의 후덥지근한 지역도 있고 저기 어디 사막도 있는 등 다양한 기후를 갖고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한 지역에서 사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느끼기란 어렵다. 멕시코시티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사계절이 없다. 시기에 따라 조금 춥거나 조금 더울 뿐이다. 날씨가 전반적으로 평온-하다.
그래서, 그런 낭만은 없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 '태양이 이글대는 여름', '가을밤이 깊어가는 시각'과 같은 계절에서 느낄 수 있는 심상. 거기에서 오는 낭만 말이다. 우리가 편지를(요즘에는 이메일을) 쓸 때 첫머리에 의례적으로 쓰는 계절과 관련된 표현도, '날도 더운데' 혹은 '추운데'로 시작하는 인사말도 없다.
대신 나는, 여기 일 년 살고 나서, 계절이 오고 감을 느끼는 나만의 기준들을 갖게 되었다. (남들도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봄과 같은 시기는 '하카란다가 피는 계절'이라고 소개한다. '하카란다(혹은 자카란다)'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피어나는 벚꽃과 꽃나무다. 멕시코시티의 2-4월에는 이 하카란다 꽃들이 흐드러지는데, 꽃마저도 멕시코스럽다. 생생한 보랏빛이 도시를 한층 칼라풀하게 꾸미며 활기를 더한다.
여름 즈음에 해당하는 6월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멕시코의 우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습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하카란다가 피는 계절'보다 서늘하다. 이 시기에는 풀과 나무들이 잘 자라서 한층 더 푸른 도시를 만날 수 있다.
9월 말부터는 주황색 꽃이 거리를 메운다. 10월 말에 있는 '죽은자의 날(dia de muertos)'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들은 9월 16일 '독립의 날'이 지나자마자 거리 화단의 꽃들을 모두 주황색의 '메리골드' 꽃으로 교체한다. 2-3일 만에 계절이 바뀌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꽃들은 '죽은자의 날'이 끝나고 2주 정도 더 피어 있는다.
메리골드가 질 때쯤에는 이 거리 화단들의 꽃들은 모두 붉은색으로 바뀌며 '갑자기 분위기 연말'을 가져온다. 붉은빛을 내는 그 꽃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에 흔히 볼 수 있는 '포인세티아'다. 여기서는 '노체부에나(noche buena)라고 부르는 이 꽃들로 연말이 왔음을 실감한다.
멕시코에는 '조명, 온도, 습도'에 따라 나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없다. 하지만 '하카란다 꽃이 피는 계절'이 있고, '메리골드가 피는 계절'이 있다. 멕시코에도 계절은 왔다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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