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스민 Oct 27. 2019

자발적 프리터로 산다는 것.

프리한 노동자의 삶

"알바라도 해야겠다"


휴식을 결심하고 퇴사를 했지만 퇴사 직후 여행만 3개월 다녀왔을 뿐, 가만있지를 못하는 성격 탓에 알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 놀면 뭐하나.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 그래서 평소 흥미 있던 분야들 중에서 이리 저리 알아보고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프리터족’이 되어 있더라. 


여기서 먼저, '프리터'란?

자유로움을 뜻하는 영어 단어 프리(free)와 노동자를 뜻하는 독어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일본의 신조어에서 시작됐다. 1987년 일본의 구인 잡지인 리크루트에서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회인 아르바이터’를 지칭하면서 처음 사용됐단다.

이후 일본의 경기침체가 시작된 후부터 정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 비정규직,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준비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까지가 네이버 지식백과의 소개이다. 어느 곳에서는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며, 자신이 생각했던 필요한 만큼의 돈이 모이면 일을 그만두고 취미생활을 즐기다 또 돈이 필요할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으로도 정의한다.

전자가 비자발적, 그리고 후자가 ‘자발적 프리터’일 것이다. 나는 후자에 포커싱을 두고 경험했던 내용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찾았던 일은 카페 아르바이트생 + 과외선생님이었다. 카페 일은 주에 이틀, 일요일, 월요일 풀타임으로, 과외는 그때그때 구해서 진행했다. 과외는 요새 인기 있는 취미 공유 플랫폼을 이용해 구했다. 나의 제1외국어인 스페인어를 가르쳤는데, 매년 뜬다 뜬다 하면서도 영어, 일어, 중국어만큼 활용도가 높지 않아 만년 ‘취미 외국어’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꾸준히 깊이 있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행용 과정으로 4회 과정, 5회 과정, 원데이 클래스 등으로 전략을 세웠더니 계속해서 학생을 구해야 하더라. 정리하자면, 카페일을 한 달에 열흘 가량 하면서 고정 수익을 벌면서 과외는 프리랜서처럼 들쭉날쭉하게,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내 시간을 조절해 가면서 추가적인 수입원으로 삼은 것이다.



"그거 할만해요?"


우선 프리터족이었을 당시 좋았던 점은 첫 번째, 내 시간을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9 to 6, 그리고 야근에 야근까지 더해졌던 직장인 때와는 다르게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건 마치 특권처럼 느껴졌다. 그 전에는 업무 특성상 언제 야근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평일엔 약속도 마음껏 잡지 못하고 잡았던 약속도 취소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프리터족이 되고선 상대의 스케줄에 맞춰 점심 약속, 저녁 약속, 티타임 등등 모든 것이 가능했다.


두 번째, 원하는 일을 쉽게 시작해 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에는 특별히 대단한 경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전문직이 아니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눈이 아주 높지만 않다면 진입장벽도 높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 일도 동시에 할 수 있다. 정규직도 아니니 언제든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다. (물론 사전에 노티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갑자기 오전에 저 그만둡니다 하고 안나가는 건 예의도 배려도 없는 몰상식한 행동이다.)



당연히 단점도 존재한다. 장점만 있으면 다 회사 때려치우고 프리터 선언하지. 가장 현실적인 단점은 돈을 벌되 월급만큼은 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업무량도 적고, 경력도 크게 필요 없는 직업인데 페이가 월급을 못 따라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원래 있던 돈을 써서라도 시간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즐겼지만, 생계용으로 프리터족이 되고 싶다 하는 사람이라면 일을 직장인만큼은 해야 돈이 어느 정도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또한 자유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컨트롤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각 없이 있다 보면 시간을 흥청망청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아예 아무 데도 안 쓰게 된다. 돈으로 비교하면 비싼 밥을 먹거나 명품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위한 사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둘둘 말아서 베개로 쓰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프리터로 계속 생활하긴 어려울까?


어디선가 이렇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나도 프리터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두 가지를 가장 크게 고려한 후에 결정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첫 번째가 돈. 노골적으로 말해서 그냥 '돈'이다. 나는 당시 어느 정도 모아둔 돈도 있었고, 그걸 조금 까먹는다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일을 적게 하고 싶었다. 


2018년 당시 카페 최저시급 7530원*하루 10시간*한 달 평균 9-10일 정도 일하고 나면 한달에 한 70만원 정도가 들어왔고, 편차가 있지만 과외로 평균 월 50만원 정도를 벌었다. 그럼 월 120만원인 건데, 전세대출이자 혹은 월세 적게 잡아 50, 관리비 10, 공과금(물, 가스, 전기, 인터넷) 10, 통신비 10 정도만 잡아도 고정비용이 이미 80이다. 여기에 보험료와 청약저축도 꾸준히 내고 있었는데 이런 건 뭐. 아무튼 월평균 용돈이 나오는 건데, 서울에서 교통비+기본적인 식비만 하더라도 40만 원은 더 나간다. 


기존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하면 그래도 몇십 만원씩은 더 까먹는다는 건데, 이런 것들을 감수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받쳐 주는지, 조금 부족하게 쓰더라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두 번째,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만큼 프리터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인식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의 인식은 자치하고서라도 스스로도 퍽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고민이 계속 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인식이 아무렇지 않다면,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더 중요하다면 그냥 하면 될 일이다. 




이런 이성적 평가 말고 그냥 나는 어땠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참 조심스럽다. 조금의 긍정의 표현이라도 퇴사가 간절한 누군가에게는 "회사 나와도 살만합니다! 다 때려치우고 나오세요!" 이렇게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아 회사 밖은 지옥이었어' 라며 글쓴이를 원망할지도 모르고. 


이 글이 퇴사를 조장하는 글이 아님을 밝히며 조심스럽게 전하는 내 대답은 "좋았다"다. 매일 같은 생활을 하다가 다른 생활을 시작하니 기분도 상쾌하고 쭈글해져있던 몸과 마음도 팽팽히 펴지는 것 같았다. 기지개를 펴고 안쓰던 근육을 쓰기 시작한 기분이랄까.


그보다 좋았던 점은 내가 다른 일로도 경제적 활동을 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땐, '앞으로 40대가 되고 50대가 될텐데 내가 계속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면 알바를 몇 가지 해보고 나서는 미래가 두렵지 않더라. 고작 알바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은 이 경험이 초석이 되어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솔직히 직장 다니던 여자들에게 결혼 및 출산 후에는 '경단녀' 혹은 '수퍼초울트라파워워킹맘'의 선택지만 주어져 있지 않나, 아직, 현실은.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경험해 보는 것은 나중을 살아낼 근거 있는 자신감, 그리고 방향을 잡아줄 나침반이 될 것이다. 커리어적으로만 보지 말고 앞으로 100세 120세를 살지도 모르는 인생 전체를 놓고 보자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장황했던 이 글의 결론은 이렇다. '월급쟁이가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프리터로 사는 것도 고려해 볼만은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30대면 어른일 줄 알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