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좌변기
김경래
쇼핑몰에 가면 화장실을 찾는다
문명이란
뒷간에서부터 공들여 변화시키는 힘이다
아늑하고 깨끗한
현대식 좌변기를 깔고 앉을 때마다
괜한 우월의식에 젖는다
그곳에 이르는 통로에 대리석이 있고
벽면에 서 있는 아기와 여자 모델은
우리의 걸음마를
실루엣으로 따라 하며 응원한다
고불고불 뒷간 길은
아즈메 사는 산동네에서 시작되었다
별빛에 발 디딜 길 밝힌 야산의 변소는
어른이 된 지금도 누가
하얀 종이 빨간 종이 하면 놀란다
도시의 불빛이 좌변기가 있는
막다른 길까지 다다르는 것은
문명은 기껏해야 똥 눌 때
눈을 감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흐르는 사잇길을 지나면
사내와 여인을 간접화법의 모양새로
네모 반듯한 칸에 밀어 넣고
반을 잘라 굳이 경계를 다짐시킨다
그대는 빨강
나는 파랑.
2015년 월간 시인마을 문학상 우수상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