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끝내주는 마트일기
어떤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가게 문을 열며
“안녕히 계세요”를 크게 소리치며 들어왔다.
순간 빵터져서 진짜 미친사람 처럼 웃었다.
한국말 배운걸 티내고 싶은 귀요미,
어떻게 안 사랑해?
우리 가게의 귀여움은 주로 할아버지들이 담당한다.
나의 편협한 데이터에 따르면,
할아버지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할머니보다.
특히 단골 할아버지들의 최애템이 하겐다즈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하겐다즈를 계산할 때,
바보처럼 헤헤헤 웃으며 소년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더운 여름날, 냉동고가 고장 나서 아이스크림이 다 녹을 위기였다.
그나마 몇 개 살려보려고 일명 쭈쭈바 냉동고 바닥에 몇 개를 옮겨 놨다.
나중에 냉동고를 고치면 다시 옮기려 임시로 놔둔 거였다.
그런데 단골 핑크팬더 할아버지가 가게로 쓱 들어오더니
냉동고가 텅 빈 걸 보고
귀신처럼 쭈쭈바 냉동고 바닥에 숨겨진 하겐다즈를 빼냈다.
(*핑크팬더 할아버지 : 핑크색 양복을 즐겨 입는 귀요미)
“.....귀신이야?”
“.....귀신이네.”
슈퍼맨과 나는 동시에 놀랐고 진짜 귀신?
혹은 우리를 씨씨 티비로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됐다.
도저히 거기 있는 걸 알 수가 없는데, 우리도 옮겨 놓고 까먹을 뻔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을 찾아가듯,
할아버지도 그냥 본능처럼
아이스크림을 향한 레이더 같은 게 있는 걸까?
치아가 약해져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먹기 편하다.
그런데 왜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할까?
찾아보니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나이가 들 수록 미각세포가 줄지만,
신기하게도 단맛을 느끼는 능력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남성은 여성보다 미각 세포가 적어서
더 강한 자극, 즉 달콤함과 차가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말 내가 수집한 데이터가 일리가 있다는 소리다.
1950대에 자란 세대에게 아이스크림은 사치품이었다.
"크면 아이스크림 실컷 먹을 거야“라는 어린 시절의 다짐.
아이스크림 한 스푼에는 수십 년의 기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첫 데이트, 뜨거운 여름 방학, 공원벤치의 오후.
달콤함이 만들어내는 도파민은 뇌의 기억 센터를 자극하고
몽글몽글한 추억과 연결된다.
할머니는 "밥 먹었니?"로 사랑을 표현하고,
할아버지는 "아이스크림 사줄까?"로 표현한다.
"손주 주려고 샀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본인이 더 많이 먹으려는 개수작 같은 것.
결국 할아버지에게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을 긴급히 소환하는, 타임머신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