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이지 Dec 17. 2019

7-5. 그랬던 우리가, 그렇게 좋았던 우리가

일곱 번째 데이트 - 광부씨



짧지만 가장 설레었던 우리의 네 번째 데이트 이후, 우리는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았다. 4000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더 솔직하고 친밀하게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들에 대해, 광산의 하루와 호텔의 하루 속에 벌어지는 서로의 일상에 대해, 다시 만나면 같이 하고 싶은 데이트 목록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서로의 사진을 보내어 달래고, 애틋한 마음은 키스와 입술 이모티콘으로 나누었다. 한 번은 그를 심문(?) 하기도 했다.


'응, 그날 떨려서 좀 주절주절했지.'

'왜 세 번째 데이트에서 떨려? 주로 세 번째 데이트에 키스해서?'

'아니, 나 세 번째까지 잘 가지도 않아.'

'그럼 보통 첫 번째 데이트에서 키스하나?'

'아니.'

'그러면 우리 첫 번째 데이트에서는 정말 나랑 키스하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그냥 한 말이야?'

'정말 키스하고 싶었어.'

'왜?'

'네가 매력적이고, 섹시하고, 재미있고, 똑똑하고, 대화도 잘 통해서.'

'그거 너무 주관적인 의견 같은데?'

'음...'

'나도 자기에 대해 나만의 주관적인 의견이 있지.'

'그게 뭔데?'

'만나면 직접 얘기해줄게.'

‘그럼 참을성 있게 기다릴게.’


그렇게 우리는 기다렸다. 다시 만날 때에는 그에 대한 나만의 주관적인 의견을 말해주겠다고, 내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 고백하겠다고 다짐하며 기다렸다.


우리가 다시 만난 날, 쉬는 날에도 이리저리 볼 일이 많은 그이기에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내가 그에게로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멕시코에서 돌아온 그를 위해 미리 주문해 간 생선초밥은 우리의 시간을 더 아껴줄 것이라는 계산도 들어간 것이었다. 다시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조금 어색했다. 그럴 때 그가 입맞춤으로 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 너랑 키스한 거 너무 좋았고 다시 하고 싶지만,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 같아. 너에게 키스를 너무 일찍 한 거 같아.”


‘응...? 지금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나는 정말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해서 그냥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두었다. 부끄럽거나 당황하면 얼굴이 달아 오른 채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그의 귀여운 모습은 이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주변의 수많은 이혼 커플들, 특히 같은 광산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 이야기를 하며 그 직업이 얼마나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기에 어려운 직종인지 이야기했다. 부재가 잦은 직업 특성 탓에 부인들의 불만이 커서 결국 직업을 바꾸거나 이혼을 하고, 아직 미혼인 남자들은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실화들을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자신의 전부인이 바람을 피운 이유 중 하나도 자신의 잦은 부재였을 것이라고 했고, 또 한 번은 소개팅녀가 그런 상황에서 연애를 해보겠다고 소개팅에 나온 그를 비웃었다고도 했다.


더구나 그는 나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에서 승진을 했고, 그 때문에 앞으로 그의 일은 지금보다 훨씬 바빠질 예정이었다. 격주로 멕시코에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멕시코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한 달에 두어 번 주말에만 집에 오는 일정을 곧 다가오는 여름부터 할 예정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해줬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도 우리에 대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혹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 어떤 결정도 약속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 잦아지게 될 그의 부재는 그를 불안하고, 또 미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나를 시간 될 때만 만나 원하는 것을 찾는 상대로 여긴다고 생각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키스를 했던 것이 성급한 행동은 아니었을지 고민했던 것이다.


"나 한 번도 네가 나를 그렇게 여긴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러면 다행이지만..."

"나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가 아니라, 서로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크기라고 생각해."

"그래도 기다리는 일이 너에게는 힘든 일이 될 텐데."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해보고 싶어. 너를 좋아하니까. 아... 너무 창피하다."

"왜 창피해?"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서."

"나도 너 좋아하는데."

"......"

"너를 계속 만나고 싶은데... 그게 너에게 괜찮을지 모르겠어."

"난 괜찮아. 우리가 서로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럼 난 괜찮아."

"그럼 우리 앞으로 계속 만나는 거야."


나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계속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지난 상처에 대해, 걱정에 대해, 그리고 소중한 것들에 대해 서로 나란히 앉아 이야기했다.



이미 6월인데도 날은 쌀쌀했다. N은 추워하는 나를 위해 벽난로에 불을 피워주고, 담요를 덮어주고, 따뜻한 차를 만들어주었다. 그에게 기대어 앉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기다란 속눈썹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너무 포근하고 따뜻했다. 바보 같지만, 그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조심스레 내 어깨에 팔을 두르자 나도 모르게 그의 가슴에 폭 머리를 묻었다. 그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 이렇게 너랑 있으니 너무 좋다. 이대로 그냥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응..."


나도 눈을 감았다. 때때로 버거운 삶의 속도와 무게에 지쳐 있던 우리에게 그 평화로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했다. 정말 그대로 그와 함께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작은 휴식이 되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우리만이 알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아쉬움과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이번에는 키스해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첫 키스보다는 좀 더 익숙하게, 더 과감하게 다가오는 그에게 나도 그를 얼마나 원하는지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서로를 눈빛으로, 숨결로, 손길로 기억할 수 있게 더 뜨겁게, 더 깊게 서로를 입 맞추고, 만지고, 느꼈다. 우리는 어느새 소파 위 쿠션도 담요도 던져 버리고 서로에게 빠져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가 당황스러움이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지금 나한테 뭘 하고 있는 거야...?”

“... 자기가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뭘 원하는지는 알아, 하지만....”


그가 시계를 쳐다보더니 허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난 나중에 우리가 온전한 밤을 함께 보내면 좋겠어.”

“아... 셀프컨트롤 너무 싫다.”


나는 그런 그의 목을 끌어당겨 다시 키스했다.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전부 전하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가 나를 원하는 만큼 나도 그를 원한다고, 오늘이 아니어도 기다리겠다고 키스로 말하고 있었다.


가끔은 우리가 자주 보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해서 아직은 새로운 우리 사이의 감정들이 혹시 사그라들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우리가 앞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안심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내가 생각했던 만큼 진실되고 진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실되고 배려 깊은 사람이어서, 난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아. 그리고 또 당신이 매력적이고 즐거운 사람이어서, 당신과 더 가까워질 것이 기대돼. 직접 말해준다고 했는데 오늘 기회가 없었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내 진심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생겼다는 것이 한없이 기뻤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의 마음에 남아 있을지 모를 어떤 걱정이나 불안함을 그렇게 지워 줄 수 있기를 바랐다. 


토론토와 멕시코, 그리고 미국까지 오가는 정신없는 일정 속에서도 그는 줄곧 다정했다. 전화기 넘어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부드러웠고, 그와의 문자는 너무나 스윗해서 내 마음을 달콤하게 녹여냈다. 그가 내 문자에 바로바로 답하지는 못해도 기회가 나는 대로 답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굳건했다. 둘이 함께 온전히 하루를 보낼 소박한 꿈도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우리였지만, 서로를 그리워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만은 가득했다. 그 마음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그랬던 우리가, 그렇게 좋았던 우리가.


그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헤어지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그것은 아직도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7-4. 우리는 그렇게만이라도 좋을 것 같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