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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Jan 17. 2021

9-3. 2020년 3월 11일

아홉 번째 데이트 - Mr. L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누워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는 계속 나를 쓰다듬어 주고 키스해주고 그의 품에 안아주었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와 숨소리를 맞추며 함께 있는 그 시간은 현실에서 아주 멀리 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절실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가에 대한 감각이 사라질 때,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시간과 함께 멈춘다. 그리고 그것들이 구성하는 나라는 존재도 희미해진다. 그 비현실 속에서 한없이 다정한 그의 손길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겨울의 한가운데, M은 이곳보다 더 차가운 알래스카로 한 달간 출장을 떠날 예정이었다. 만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우리가 떨어져 보내야 하는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서로에 대한 마음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또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한 달 후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던 것은, 기대가 실망과 상처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불안은 불행이 다가왔을 때 마음을 지켜 줄 방패가 될 순 없어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예측했다는 착각과 위로는 되어준다. 기대를 내려놓고 불안을 사용할 줄 알게 된 어른의 연애는 더 쉽지만, 그래서 더 어렵다.  


그가 떠나기 전 남은 일주일, 우리는 서로 바쁜 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두 번을 더 만났다. 언젠가 같이 떠날 여행에 대해, 또 다가올 여름에 함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금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듣고, 한번 더 키스하기 위해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냈다.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잠이 든 나를 깨우고 다정하게 작별 키스해주던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을 알았다. 다음 날 그는 떠났지만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는 여정 곳곳에서 문자를 보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물었다. 저녁에는 시차를 계산해 전화통화를 했고, 각자 먹은 저녁밥 사진을 서로 보내기도 했다. 서로에게 그립다는 말을 처음 건넨 것도 헤어져 있던 그때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Anchorage, Alaska, United States


2020년 3월 11일. 세계 보건기구가 코로나 19를 팬데믹(pandemic), 전 세계적 전염병으로 선포했다. 이틀 뒤 캐나다 정부는 해외에 있는 캐나다 국민들에게 귀국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 돌아올 것을 권고했다. 국경이 닫힌다, 해외 파견된 군대를 불러들인다, 통행금지가 실시된다 등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주정부는 이미 봄방학 이후 학교를 열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항공사들은 수많은 국제 항공 편들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길고 긴 코로나 시대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것이 모두에게 가져 올 엄청난 여파를 그때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무엇보다 알래스카에 있는 M이 걱정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려 다투는 아수라장 속에 있을 때에도, 그가 최대한 빨리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는 항공편이 없으면 육로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70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와야 할 그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찔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곧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캐나다 정부는 해외에서 귀국하는 모든 사람들의 14일 자가격리를 시행했다. 3월 16일, 호텔 객실 점유율이 전례 없는 한 자릿수로 바닥을 치자, 나는 회사에서 임시해고를 당했다. 모든 일들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고,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나는 멍하니 충격에 쌓여있다가 M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해줘.'


그날의 내게는 그 어떤 희망이 간절했다. 내 주위의 너무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내 삶도 그 속에 휩쓸리고 있는 것 같은 심정에 붙잡을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오늘 밤 포틀랜드로 갈 거야. 거기서 내일 밴쿠버로 가고. 그 후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단 캐나다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너무 잘됐다! 드디어 하나의 좋은 소식이 있네!’


기대하지 못했던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그는 하루 종일 캐나다로 돌아올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응. 네 마음을 조금이나마 밝게 해 줄 수 있어 좋다.’

‘와서 격리해야 되지만 적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거니까. 너무 안심된다.’

‘이렇게까지 돼서 미안해.’

‘무사히 돌아와. 보고 싶어.’

‘나도 보고 싶어.’


The Magnet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는 내가 언뜻 부탁했던 알래스카 냉장고 자석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 것을 잊지 않아 준 그의 마음이 어둡고 두려운 내 마음에 빛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길고 어려운 여정 끝에 드디어 그가 돌아왔다. 그가 도착한 다음 날 아침, 3주 만에 그를 보았다. 우리는 현관을 사이에 두고 집안과 바깥에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손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우리가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의 재회였지만,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눈 앞에 있는 그가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피곤하지만 편안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애틋해서, 다가가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아득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2주나 이렇게 혼자 있어야 해서 어떡해..."

"답답하면 뒷마당에 나가지 뭐."

"그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너무 잔인하다."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좋다."

"그럼 또 이렇게 보러 올게."


2주간 홀로 집안에 갇혀 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만두를 만들었다는 핑계로, 친구를 만나고 가는 길에 들르겠다는 핑계로, 또 보고 싶다는 진심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얼굴을 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서로에 대한 열망은 더 커져갔다. 


'아까 나한테 키스하고 싶었어?'

'응, 하지만 참았지. 너는 키스하고 싶었어?'

'응... 지금도 하고 싶은걸.'

'나도 그래.'

'같이 있고 싶다...'

'나도 같이 있고 싶어.'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M의 클라이언트 중 가장 큰 캐나다 회사인 항공기 제조사가 생산라인을 중단했다. 또 다른 클라이언트인 지역 항공사도 모든 운항을 중지하고 공항을 폐쇄했다. 내가 일하는 호텔도 기한 없이 문을 닫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고, 코로나로 의한 위기는 바이러스가 퍼지 듯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으로 급속도로 퍼져 들었다. 불안과 긴장 속에, 내게 유일한 기대는 그와 다시 함께 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했던 그 3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다시 서로를 안아줄 수 있었다. 투박한 그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간절한 일이 될 줄 몰랐다. 평범했던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고,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닥칠지 전혀 알 수 없는 채, 서로에게 오래도록 안겨있었다. 




사진: Anchorage, Alaska,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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