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 대표작들이 꽤 많지만 그런 유명 작품들을 통해 좋아하게 된 건 아니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을 하며 누가 봐도 찌들어 보였던 대학원생 시절, 잠시 숨을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시간을 쪼개 도서관을 전전하던 때에 눈에 들어온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었다. 쿨하지 못하고 와일드하지 못해 가뜩이나 상심해 있던 내게 일탈과도 같았던 책 제목에 넋이 나갔고 '빌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팔을 먼저 뻗어 책을 뽑았다.
유명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원래 없었다. 그런데 책 제목 하나만 보고 덜컥 선택을 해버린 나. 그냥 그 책 하나만 들고 있어도 나 자신이 엄청 쿨하고 와일드한 멋쟁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빌렸는데 읽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지막을 넘기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딱 이 생각 하나만 들었다.
'내가 왜 이제야 하루키 책을 읽은 걸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 노벨상 후보로 오르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저 두 개의 프레임을 씌워 둔 상태였다. '그러니까 사실 하루키 작가의 수필집은 꽤 고상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가짐과 '봐봐, 나 정말 쿨하지 않아?'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내한테 잔소리를 들으며 심드렁하게 동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고 재미없는 아재 농담을 하는 아저씨가 일상생활을 적어놓은 일기장 같은 게 아닌가? 너무나도 친숙하고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 것만 같은(나는 아재 개그가 정말 웃기다. 진심이다.) 하루키의 수필에 나는 그만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진짜 내가 하루키의 수필에 푹 빠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루키는 누구나 겪을법한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 촌설 살인을 뜬금없이 날려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너무 기가 막힌 순간에 날려주니 그때마다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너무 짜릿했고 매력적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대학원 생활 속에서 나는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느끼려고 부지런히 애썼고 그러한 순간들을 좋아했고 동경했다. 내 개인적 욕심은 컸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명예, 야망보다는 작은 행복들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그랬기에 하루키의 수필들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감동을 주었다.
그 후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하루키가 만든 단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고 기뻤다. 단순히 책 내용이 '재미있다', '의미 있다'가 아닌 인생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작가를 만났다는 사실은 북러버인 내게 꽤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루키는 내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작가가 되었다.
위트 있는 제목, 소소한 일상을 맛깔나게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앞으로의 일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