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다 만난 셜록 홈즈
추리소설의 세계로 입문하다
우리 집에는 외삼촌께서 주셨다는 전집이 있었다. 그런데 책 출판일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판되었다 보니 '습니다'가 '읍니다'로 표현되는 등 어색한 표현들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글자도 작고 글꼴도 안 예뻤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좀 어색했는지 그렇게 책장에 고이 놔두었다.
본격으로 그 책들을 이용한 건 라면 냄비 받침대로 쓰려고 찾던 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집에 전용 받침대가 있긴 했지만 실리콘이라 식탁 유리에 딱 달라붙어버리니 여간 불편했던 터라 너무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고 적당한 두께의 물건을 찾던 중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사용하던 나는 우연히 눈길을 끄는 책을 뽑게 되었다. '인간 원숭이'라는 글자와 함께 허리를 구부린 채 불편하게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안경 쓴 너드남이 그려진 책이었다. '진화론 대한 내용이 있을법한 전문 서적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제목이 왜 이래?'라는 생각과 함께 스멀스멀 올라오는 호기심이 생겨 다른 책으로 받침대를 대체하고는 자리에 앉아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셜록 홈즈를 만났다.
뛰어난 두뇌 능력과 관찰력 냉철함과 날카로운 카리스마, 강자에겐 한없이 강하나 약자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매너를 보여주는 그에게 빠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반전과 풀리지 않은 범죄 사건을 술술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워 책을 손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책도 얇으니 술술 읽힐 수밖에(나중에 알고 보니 단편들만 모아둔 전집이었다).
셜록 홈즈의 새로운 사건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은 정말 짜릿했다. 마치 에베레스트를 꼭대기에 깃발을 꽂는 기분이랄까? '내가 왜 여태 이 책을 이렇게 방치했을까'라는 기분 좋은 질타를 스스로에게 하기도 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추리소설의 매력을 셜록 홈즈가 완벽하게 알려주었다.
추리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온 책들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반전 결과에 한동안 책을 덮지 못하고 멍해 있기도 했고 에르퀼 푸와로 탐정과 함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며 여러 캐릭터들을 하나로 모으는 전개 과정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괴짜 천재 탐정 '셜록 홈즈'를 배고파서 끓인 라면을 먹다 만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작가 '아서 코난 도일'께 감사하고 그 책을 주신 외삼촌께 감사하고 버리지 않고 보관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책을 사랑하는 북러버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하다.
셜록 홈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