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억 중 잊지 못하는 일들 중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서 대략 10~15분 거리에 있던 도서관에 갇혔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나섰다. 친구가 먼저 나가고 내가 나가려는데 순간 문이 잠겨버린 것이다. 아무리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도 안 열리자 두려움에 눈물이 핑 돌았는데 '삐~'하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자 놀라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 친구와 눈만 멀뚱멀뚱 뜬 상황이 몇 초간 지속되었다. 고작 1학년 뭘 알겠는가? 그러다 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한 도서관 직원분이 나를 보시고는 다가와 말씀하셨다.
"괜찮아. 지금 민방위 훈련 중이라는 건데 곧 문이 열릴 거야."
민방위 훈련이 뭔 말인지는 몰랐지만 곧 문이 열릴 거라는 말에 마음이 진정되었던 나, 문이 열리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하지만 다음날 언제 그랬냐듯이 도서관을 향했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계속 다녔다.
책장 가득히 꽂혀있는 책들, 딱딱한 의자와 책상만 있는 게 아닌 알록달록한 침대 같은 의자들까지, 누워서 뒹굴면서 읽어도 아무도 혼내지 않았던 도서관은 나에겐 또 다른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책과 친해졌다.
그래서 새로 이사 온 곳이 처음에는 싫었다. 주변에 도서관은커녕 아무것도 없이 아파트와 몇몇 상가 그리고 학교 하나가 딸랑 있었는데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곳이다 보니 예전 살던 동네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친구를 통해 이동식 도서관을 알게 되었고 매주 화요일마다 책을 빌렸다. 버스도 아닌 작은 중형차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매주 찾아오는 설렘이자 기쁨이었다. 종이로 만들어진 회원증을 소중히 보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는 아파트 내에 '작은 도서관'도 생겼다. 비록 알록달록한 의자도 없었고 칙칙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지하 도서관이었지만 그 냄새마저도 좋았다. 책이 있었으니까. 여름방학 때는 시원해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거의 도보로 30분 ~ 1시간 되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다녔다.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주말에는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조용하고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던 그 도서관은 사춘기 시절 나의 소중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으로 학과 건물을 나서자마자 제일 먼저 학교 지도에서 찾아본 건 역시나 도서관. 그리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책들의 위엄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책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을, 빽빽이 꽂혀있는 책들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책 속에 파묻히고 싶은 그 가슴 뛰는 감정을.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는 도서관이 나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