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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만 뜨면 영국인들은 옷을 벗는다.

by 런브 Mar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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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국 날씨가 이상할 정도로 좋다. 


해가 귀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구름이 있을려나?', '비가 올려나?'

아침마다 확인하고 입을 옷을 날씨에 맞게 챙겨 입게 된다. 그런데 최근 런던은 날씨는 온통 해가 쨍쨍하다. 

영국 날씨는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몰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만, 따뜻한 햇살이 그저 반갑고 기쁘기만 하다.


영국에 오기 전, 내 머릿속 영국은 안개가 자욱하고 추운 겨울이었다. 영국 신사들이 긴 우산을 들고 있지만, 정작 우산을 펼쳐 쓰기보다는 지팡이처럼 짚고 다니는 모습이었다.그런 기대를 품고 12월 한겨울, 처음 영국 땅을 밟았다. 두툼한 옷과 장갑, 털모자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도착했지만, 예상과 달르게 한국의 매서운 바람 대신 부드러운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싶었지만, 그 뒤로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겨울이 되면 해를 보기가 어려웠고, 오후 3시면 어둑해졌다. 오래된 집들은 실내조차 어둑해서, 영국의 겨울을 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영국 날씨는 정말 예측이 어렵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이 금세 비를 뿌리고, 다시 해가 나더니 갑자기 바람이 거세진다.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때가 많다. 그래서 “영국에서 굳이 일기예보를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이런 날씨 덕분인지, 영국 사람들은 웬만한 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이 비 때문에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학생들은 비를 흠뻑 맞으며 스포츠 경기를 하고, 진흙탕에서도 신나게 뒹군다. 한국 같으면 비 오는 날 실외 활동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국에서는 비와 바람을 핑계로 뭔가를 미루는 일이 거의 없다.


이처럼 흐리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익숙한 영국인들에게 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공원으로 몰려간다. 몸길이만 한 타월을 깔고 누워, 마치 고기를 뒤집어가며 굽듯이 몸을 앞뒤로 바꿔가며 일광욕을 즐긴다. 와인 한잔을 곁들이고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즐기며 하루종일 앞으로 누웠다 뒤로 누었다를 반복한다. 온몸 구석구석 광합성을 듬뿍 받으며 온몸이 뻘겋게 되기까지 그들의 몸을 해에 맡긴다. 마치 해가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한 비상식량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벤치 위에도, 잔디밭 곳곳에도 사람들은 한껏 몸을 뻗고 누워 해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반려견들은 주인과 함께 해를 쬐며 평화롭게 늘어져 있다.숍에서도 빠르게 반응한다. 야외 테라스 좌석은 금세 만석이 되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선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리를 오가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축제라도 열린 듯, 해가 뜨는 것만으로도 도시 전체에 생기가 돈다.


그만큼 햇살은 이들에게 소중하다. 해가 떠오르면 공원마다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진다. 하지만 흐린 날이 계속되면 분위기마저 가라앉는다. 이런 영국의 날씨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특히 낯설다. 한국에서는 흐린 날도 많지만, 그래도 사계절이 뚜렷하고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처음 영국에 온 사람들은 종종 우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해가 짧고 어두운 날이 이어질수록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날씨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자연 중 하나이다. 그날의 기분을 결정하기도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해가 비치는 날이면 괜히 활기차지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마음도 가라앉는다.

그래서 요즘처럼 햇살이 계속 내리쬐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비록 언제 또 흐려질지 모르는 영국 날씨지만,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다. 이 따뜻한 햇살이 오래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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