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나 Feb 16. 2024

그때 그 얘기는 왜 했을까

아... 어리고 순진했던 나여...

  예전의 나는 극 E성향의 사람이었다. 낯가림이 거의 없고 내 얘기를 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나였기에 신입사원 시절 나의 입을 통해 발화된 이야기들이 일부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여주는 꼴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의 이야기들은 나에 대한 정보이고, 그것들이 몇몇 사람들의 찌질함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일명 뇌피셜) 나에 대한 어이없는 선입견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는 더더욱.


  내가 회사에 들어와 했던 많은 말들 중 가장 후회한 건 바로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꼭 집어 말하자면 부(父)에 대한 이야기. 에필로그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나의 부는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 꽤 높은 직급의 임원으로 퇴직하셨다. 그렇다고 지금 몇몇 회사의 임원들처럼 엄청난 연봉을 받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부에 대한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건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주변인들이 이 사실에 특별하게 반응한 적도, 화제가 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에 나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에 부가 자주 등장했다. 특히 회식자리 같은 데에서. 그때까지 순진했던 나는 ‘저들은 왜 툭하면 나의 일이나 우리 회사와 관련 없는 나의 부 얘기를 자꾸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부(父)를 언급하는 이유가 마냥 곱게 자란 것 같은 내가 아니꼽긴 하지만 혹시나 인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탐색하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부에 대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어린 시절이 불우한 경우가 많았고(강압적인 부모 또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이후에도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 상황이 좋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집착을 보였다.


  회사에 들어가서 처음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사람을 시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매우 낮으며 남을 끌어내려야 자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대기업에서는 그런 사람들도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연차가 쌓이고 승진하여 관리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당신의 상사가 된다면? 그들은 그것도 권력이라고 자신들보다 능력 있어 자신의 밑천 없음을 증명할 듯 보이는 부하직원들(그렇다, 그들은 피해의식에도 쩔어 있다!)에게 적대적이고, 물귀신이나 좀비처럼 그들을 괴롭혀 자신들과 같은 세계로 끌어내리려 노력한다. 당연히 그들은 내가 준 무기로 나를 그렇게 공격했고, 나는 크게 상처 입고 말았다.


  ‘이 모든 시련을 다 겪어내고 찌질이들은 망하고 나는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론은 맞이했으면 좋았겠지만 과연 작정하고 괴롭히는 사람과 상황을 잘 견뎌낼 아주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꼽만 하더라도 권선징악이 존재해서 그런 사람들이 남들 괴롭힌 만큼의 고통은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전 04화 가장 경계해야 하는 족속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