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이 가장 선량하고 친절하다고 주장하는 자들
입사 후 모든 연수를 끝내기까지 거의 3달이 걸렸다. 도대체 왜 회사는 그 막대한 돈을 들여 신입사원들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을 시키는지 그때도 지금도 이해하기가 힘들다.(현재 내가 받았던 그룹 연수는 없어졌다) 현업에 투입된 후엔 교육에서 배운 것 따위 도움도 안 되고, 모두 힘을 합쳐 신입사원들을 질리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교육은 신입사원이 아닌 상사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한국의 대학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을 가뿐히 평범하게 느끼게 할 정도로 유학 시절에 만난 사람들 또한 너무나 독특했기에 그 이상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부서 배치 후 며칠 안되어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내가 도착한 곳은 이름만 대기업인 정글이었고 보도 듯도 못한 인간상은 무궁무진했다.
뮤지컬 위키드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정말로 경계해야 할 사람은 자기가 선량하다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착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지.' 이는 내가 유학시절 내내 들었던 말과 일맥상통했다. ‘처음 왔을 때 친절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가장 조심해야 해. 그런 사람들이 말도 제일 많이 만들고 뒤통수도 가장 잘 치거든.’ 이 말이 세상 어디에서나 통하는 진리라는 걸 나는 입사 후에 알게 되었다.
처음 부서 배치를 받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몇몇 분들이 내 주위로 다가왔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뭐 기본적인 호구조사야 통과의례이니 그렇다 치고, (개인적으론 매우 무례하다 생각한다!) 웃겼던 건 내가 가장 처음 받았던 질문이 나의 본가가 서울 어디인가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내가 배치받은 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지방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사 근처 또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당연히 그들이 서울의 모든 동을 알리 없을 테니 두루뭉술 답했다.(당연히 그들이 알만하고 기대하는 지역이 아니다) 그런데 그 후 이어진 대화의 흐름이 이상했다. 누구(통성명만 한지라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는 어디 살고 자가이며 그 동네가 여기서는 서울의 청담동 같은 곳이고 또 다른 누구는 어쩌고 저쩌고… 그렇다. 그들이 내가 사는 동네를 물어본 건 그것으로 나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부모님의 재력 정도를 파악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같은 동네에 사는 초딩들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계급을 나눈다더니 그걸 그 어린것들이 어디서 배웠겠는가, 다 어른들 보고 배웠겠지. 사실 나는 동네에 따른 부(副) 같은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디에든 돈 많은 사람과 빈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동네와 상관없이 진짜로 돈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 꽤나 먹은 사람들이 일차원적 발상으로 처음 만난 신입사원 앞에서 이런 대화나 하고 있다니. 역시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건 초반 나에게 친절한 얼굴을 가면처럼 쓰고 이것저것 정보(?)를 캐묻던 사람들이 부서에서 가장 정치질 잘하고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예부터 전해오는 말이나 속담, 남들에게 회자되는 말 따위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라고 치부하던 내가 옛 어른들 말은 다 ‘진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역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장 선량하고 친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량하고 친절한’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내가 빌붙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거나 내 꼬붕으로 만들어 쓸모 있거나) 사람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족속들이었던 것이다. 역시 제일 무서운 건 인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