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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Dec 02. 2023

게젤이 틀렸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한 우리나라 학부모

한글 공부, 절대로 시키지 마세요 (1)

학자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게젤(Arnold Gesell, 1880년~1961년)이라는 학자, 발달심리학과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학자입니다. 그는 사진을 활용하여 아이들의 발달에 대해 세심하게 연구했습니다. 유리로 돔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아이와 직접 상호작용하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연속사진으로 찍고 발달과정을 기록하여 연령별 발달이정표를 만든 학자입니다.


<출처: Gesell Program in Early Childhood 웹사이트>


예를 들어, "구슬같이 작은 물건을 손으로 집는 동작 패턴이 월령마다 다를까?"와 같은 질문을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했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사진 오른쪽 하단의 숫자는 개월 수입니다. 한 아이가 20, 24, 28, 32, 40, 52개월에 이를 때마다, 같은 작업을 하게 하고 이를 사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출처: Gesell, 1932, 145쪽>


게젤은 발달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며, 글자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언제인지도 알아냈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일까요? 만 5세 전후라고 합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을까요? 글자공부를 하려면 시각적 변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능력이 만 5세쯤에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각적 변별력은 눈으로 ‘딱’ 봐서 서로 다른 점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영어 철자로 예를 들면, 비슷하게 생긴 ‘b’와 ‘d’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한 게젤의 연구가 틀렸다는 걸 실천적으로 증명해 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부모들입니다. 우리 학부모들은 만 3세 아이들도 충분히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글을 깨치기 위해 만 5세까지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만 5세 이전에도 얼마든지 한글 읽고 쓰기가 가능합니다. 시각적 변별력이 글자 공부의 선행조건이라면, 그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만 5세 전후에 시각적 변별력이 생긴다는 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연습한다면, 그리고 훈련한다면 얼마든지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항, 많이 보셨죠? 왼쪽 첫 번째 그림과 나머지 그림을 비교하여 다른 점을 찾는 문제입니다. 바로 시각적 변별력을 검사하는 문항입니다.


<시각적 변별력 문항의 예, 그림: 최인아>


이런 검사는, 운전면허시험과는 달리, 연습하고 응시하면 안 됩니다. 연습하지 않고 풀어야 자신의 원래 능력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사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렇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일부 주(州)에만 해당하는 그리고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시험을 통과해야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진학이 가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습준비도검사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그 검사에는 시각적 변별력을 묻는 문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서 유치원을 1년 더 다녀야 한다면! 당연히 예상 문제 풀이 연습을 시켜야겠지요! 물론 그렇든 말든, 아무 준비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학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빠라면? 저도 준비를 시켰을지 모릅니다. 아이가 문제 풀이 연습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고통보다 유급으로 인해 겪게 될 어려움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시각적 변별력 문항이 학습준비도검사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시각적 변별력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검사에서 주요 평가항목의 하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각종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아이를 훈련시키면 됩니다. 방법도 간단합니다. 영재로 만들 수 있다는 선전 문구를 앞세운 다양한 학습지를 많이 풀어보게 하면 됩니다. 학습지마다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기존 검사 문항을 기본 틀로 삼아 세부 내용만 살짝 바꾼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안에는 당연히 시각적 변별력을 다루는 문항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면 당연히 시각적 변별력이 길러질 테고, 그럼 글자 공부를 시작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됩니다. 게젤은 만 5세가 될 때까지 글자 공부를 미루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요즈음엔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 3세 아이들도 시각적 변별력을 가질 수 있고, 당연히 한글 읽고 쓰기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Gesell, A. (1932). The developmental morphology of infant behavior patter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8(2), 139-143. (145쪽은 부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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