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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 Jul 11. 2024

마흔이 되어 친정을 살펴보니

자식이 힘들어 죽겠다는데 어떡하겠어

자식이 힘들어 죽겠다는데 어떡하겠어

요즘 마흔과 관련된 책이 정말 많이 출판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 한성희 작가님의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

“마흔에 접어들며 경험하는 혼란은 전환의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새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가라는 내면의 소리다. 이때의 혼란은 삶을 재정비하고 다시 성장하기 위해 누구나 거치는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특히 이 문장을 여러 번 곱씹으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혼란을 조금은 당연한 것이라고 다독여본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생 모드여서 몰랐던 걸까.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 부대끼는 상황도 많았지만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워낙 커서 그랬는지 지금처럼 친정집의 이슈가 마음을 조여오진 않았던 것 같다.


결혼식 날짜는 정해졌는데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때, 다행히 친정과 5분 거리의 아파트와 새로 입주할 시기가 겹쳐 간당간당 집을 한채 구할 수 있었다. 거의 40년 동안 친정집에서 살았던 나는 너무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진정한 독립이 아닌 것 같아 약간은 싫은 마음도 있었다.


아버지는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왼쪽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하셔서 혹시 화장실에 혼자 가시다 넘어지기라도 하실까 봐 엄마와 나는 밤에 거의 푹 자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힘든 상황도 여러 번 있었지만 전우처럼 동료처럼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엄마와의 팀워크로 다져진 세월이 얼만데 결혼하면서 집을 나가는 것이 조금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서른 후반의 나는 이미 마흔의 혼란이 찾아온 지 오래였다. 결혼 며칠 전부터 집을 나와 신혼집에 혼자 살며 며칠간의 진정한 독립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한 해방감과 자유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 후 다행히 각자의 삶에서 자리를 만들며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 아버지를 잘 케어하시고 일도 하시며 모든 게 편안해지던 어느 날,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겼다. 오빠가 사업을 한다고 엄마가 그동안 모아둔 현금을 털어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아빠를 데려가 논과 집을 담보로 대출을 풀로 땡겨 받은 것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오빠가 결혼할 때 부모님은 아파트도 한 채 장만해 주시고 자동차 사는 것도 도와주셨다. 오빠는 약간 오른 아파트를 팔아 집을 짓기 시작하더니 빚을 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벤츠를 타고 다니고 아이들은 좋은 유치원에 보냈다. 그동안 새언니와 오빠는 겨우 명절에나 얼굴을 비쳐왔고 그나마 겨우 두 번 있는 명절도 근래에는 한 번씩 빼먹어왔다. 나에게도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가 여러 번 오기 시작했다.


무슨 사업을 얼마나 벌여 말아먹은 건지 새로 지은 집도 부모님 논도 집도 곧 경매가 들어온단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는 상황에 내몰린 모습에 분통이 터져 더 이상 돈을 주지 말라고 사정했다. 엄마는 자식이 힘들어 죽겠다는데 어떻게 모른 채 하냐고 슬퍼했다. 그래도 몇 푼 남은 돈은 꼭 가지고 있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확히 어제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오빠가 갑자기 집에 왔는데 밖에 사채업자가 따라왔다고 오도 가도 못하고 숨어있다고 했다. 나는 다급하게 오빠가 알아서 하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엄마는 오빠한테 쌍욕을 하는 사채업자의 전화를 가로채 본인에게 1주일만 주면 빌려서 갚아드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살면서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자식을 마흔 후반이 넘도록 뒷바라지하고도 모자라 빚까지 생긴 부모님을 바라보는 내 속이 쓰리다. 집까지 사채업자를 끌어와 성치도 않고 고생만 한 칠십넘은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인간을 오빠로 생각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접근금지 요청을 해야 할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울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엄마의 마음도 이해해 가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집도 논도 돈도 내준 것은 엄마의 선택이고 오빠에게 주라고 주지 말라고 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으니 앞으로는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 가까운 집 거리만큼 시시콜콜 전해 듣는 엄마의 사정이 나를 아프게 한다. 부모라서 평생 자식의 ATM기가 되어도 되는 걸까. 왜 이런 상황까지 온 걸까. 언젠가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진작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마흔은 더 이상 나의 고민만을 풀어가는 나이가 아닌가 보다. 그래서 마흔이 힘든 나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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