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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 Aug 09. 2024

생각보다 어려운 '코밍아웃'

누군가의 재채기로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를 손에 들고 눈누난나 스타벅스에 갔다. 오전에 갔을 때는 분명 사람이 드문드문 있어서 쾌적하게 앉아 있었는데 1시가 지나면서 사람들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2층짜리 건물로 층고가 높아 소음이 굉장했지만 집에 가면 책을 읽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소파 한쪽에 엉덩이를 걸치고 책에 눈을 파묻었다. 그런데 갑자기

 

'에.이.취.'


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에. 이. 취.라는 소리가 트리거가 되어 포스터에 그려져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 모양이 떠오랐고 그 바이러스가 둥둥 떠다니다 내 코에 들어가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건 정말이다. 그리고 정확히 3일 뒤 목구멍이 간질간질했다.   


그래도 에어컨을 세게 틀어 감기가 온 거라고 생각했지 진짜 코로나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대상포진이 왔을 때 경험해 봤던 근육통이 등 쪽을 난타하고 머릿속은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하고 가위에 눌리기를 몇 번 하고나서야 새벽을 맞았다.


'이건 심상치 않다. 사달이 났다'


싶어 다음날 마스크를 끼고 병원에 갔다. 원래 집 앞에 애정하는 이비인후과가 있었는데 실망스럽게도 '휴가'라는 A4용지 안내문만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항상 환자가 별로 없는 그 옆의 내과로 갔다. 의사는 진료를 하더니 요즘 감기의 90%가 코로나라고 했다. 그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체온기를 귀에 대었다 떼더니 미열이 있다고 했다. 의사의 표정은 더욱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병원에서 하는 코로나 검사는 2만 원이고, 약국에 가면 5천 원짜리 자가키트가 있으니깐 한번 검사해 보세요. 어차피 코로나랑 일반 감기랑 처방은 똑같아요"


그래서 나는 병원을 나와 약국에서 자가키트 하나를 구입했다. 차로 갔다. 병원 앞은 항상 주차가 힘들어 인도와 주차장 사이의 애매한 공간에 대충 차를 대놓은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고 코로나 검사를 아주 신중하게 진행했다.


결과는 양성. 임신테스트처럼 2줄이 나왔다. 갑자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생각났다. 둘 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주부인데 혹시라도 나 때문에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또한 오늘 11시에 미팅이 잡혀있어서 나는 정말 난감했다. 당연히 미팅은 웬만하면 빠지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먼저 오늘 미팅을 취소했다. 물론 나만 빠지면 됐다. 그리고 사무실 이사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가서 짐을 싸야 했기 때문에 잠시 사무실에 들렀다.


그런데 '내가 코로나라서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란 말이 차마 나오지가 않았다. 이물 없지도 냉랭하지도 않은 보통사이라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이 동료들이 코로나라도 걸리면 나를 원망할 것 같아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나는 대충 '집에 일이 있어서 내가 경황이 없네. 일찍 가볼게요'하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나의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오늘 아침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사람들이 양심이 없어서 코로나가 걸려도 말도 안 하고 돌아다녀요'

결국 30분 정도 고민하다 그중 더 친하다고 생각됐던 동료에게 연락해서 말해버렸다.

"나 코로나예요. 어떡해요. 옮기면..."

"에이 걱정 마시고 몸 잘 챙기세요"

그랬다. 내가 너무 앞서나갔나.


소심한 나에게 뭐 하나 쉬운 일이 없긴 하지만 ‘코밍아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실 숨길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해서 대비하는 것과 무방비로 당하는 것은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코로나의 존재를 너무 잊고 있었나 보다. 밀집된 장소에서는 꼭 마스크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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