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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삶 Apr 07. 2023

번아웃과 코로나의 공통점

팬데믹이 한창일 때, 많은 공감을 받았던 셀프 코로나 판별법.


내가 코로나에 걸렸는지 긴가민가하다

☞ 음성일 확률 높음. 출근하기 싫은 날 피로를 붙잡고 돌리는 희망회로.

(아침에 일어나) 헉!!! 이거 코로나다!!!!

☞ 양성일 확률 높음. 차원이 다른 통증 때문에 바로 느낌이 옴.


매우 비과학적이지만 꽤나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썰이었다.


내게는 이번 번아웃이 그랬다. 일하기 싫은 날이면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번아웃 체크리스트 따위를 해보곤 했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 그 날은 의심의 여지 없이 번아웃에 정면으로 펀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정말 정말 바쁘긴 했다. 퇴근하면 진이 빠져 있거나 그나마 빠져나간 체력을 운동으로 메꿔야 해서 저녁 약속은 꿈도 못 꾸는데, 어쩌다 불금을 한번 보내볼라치면 아래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1)  제때 일이 안 끝나서 늦는다.

(2)  가는 길에 전화나 스마트폰으로 일한다.

(3)  도착해서 노트북이나 전화로 일을 마무리한다.


셋 중의 하나는 기본, 재수가 없으면 지하철 안에서 일하다 내릴 곳을 놓쳐 택시를 타는 건 옵션이다.

어쩌다 휴가를 내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1)  보통 최소 다섯 번은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2)  바다에 가면 배 위에서 전화를 받는다.

(3)  산에 가면 산 위에서 전화를 받는다.


한라산 1000m 고도에서도 통신이 되는 엿 같은 세상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일도 손에 익었고, 심지어 꽤나 잘한다는 평가도 받았고, 드디어 지지리도 없던 상사 복도 생겼는데, 그것들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난 스스로 괜찮아야만 한다고 세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한 건 얼마 전, 8개월이었던 프로젝트 기간이 일 년으로 늘어나면서부터다. 8개월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에너지를 일 년으로 늘려 쓰게 되면서 내면의 모티브가 없어져버렸다. 회사 일에 변수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물잔에 99% 차있던 물이 한 방울만 더해지면 넘치듯,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느낀 증상은 사무실에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였다. 나는 이미 몇 년 전 과로로 인한 불안장애를 경험해본 적이 있기에, 상비약으로 처방받아둔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조금 버텼다. 그때도 잘 극복해 냈으니 나는 틀림없이 괜찮아질거라고 되뇌어 봤지만, 또 향정신성 약을 먹으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두 번째로 문제가 생긴 건 수면이다. 보통은 잠들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깨는 데 더 문제가 심했다. 보통 새벽 네다섯시쯤 꿈을 꾼다. 출근했는데 상사 중의 한 명이 퇴사한다면서 사장에게 메일을 남기고 쿨하게 퇴사해버린다거나, 하고 있는 일에 문제가 생겼다고 전화를 받거나, 어떤 날은 내가 상무님께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는 마음속 희망이 반영된 듯한 꿈을 꾸기도 한다.


공통점은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이며, 깰 때는 숨이 턱 막히며 온 몸을 경련처럼 부들부들 떨며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렇게 깨면 오늘 출근하면 해야될 일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되어 나를 괴롭힌다. 지난주에 했어야 했던 보고, 어제 동료가 물어본 질문, 오늘 해야할 미팅, 곧 해야 하는데 아직 자료도 못받은 미팅.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떠올라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직장인 앱 B***를 켜고 '번아웃' ‘우울증 휴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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