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며 나를 찾다

나의 본질 확인하기

by 나답게 류태섭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했던 시간들


회사 생활 5년 차.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게 괜찮았습니다.

좋은 회사, 괜찮은 연봉, 인정받는 업무 성과. 주변에서는 "잘 나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답답하다는 걸.

새로운 기획안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구성원들이 더 동기부여될 것 같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은데, 일단 보류하자."

다음 기획안도 그랬습니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기회는 적었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의 한계였습니다. 승인 과정, 예산 문제, 우선순위. 이해는 했지만, 답답했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닌데.'

그렇게 나의 본질적인 부분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쌓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해야 할 일만 하는 나날들.

스트레스는 조금씩 쌓였습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저는 쓰러졌습니다.



거울 속 낯선 나를 마주한 순간, 생각이 변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진단명은 '돌발성 난청'.

의사는 말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치료를 받았지만, 청력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오른쪽 귀는 들리지 않습니다.

몸이 신호를 보낸 겁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지만 쉽게 바꿀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바라는 게 있었으니까요.

"안정적인 직장에 다녀야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트라우마가 있으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생계를 책임지시면서, 더욱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춰 한계를 두고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안정적이지 않으면"이라는 생각에 멈췄습니다.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2015년 2월.

딸이 태어났습니다.

제 품에 안긴 딸을 보며,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딸을 어떻게 키울까?"

선배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습니다. 육아 책도 읽고, 교육 방법도 찾아봤습니다.

모든 내용을 모아보니 하나로 귀결되었습니다.

'딸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딸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를 바란다면. 저부터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말로만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하면서, 정작 저는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산다면. 딸이 그걸 보고 자란다면.

딸은 어떻게 배울까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고 있었다는 걸.


본질을 잃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진짜 제 모습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걸.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도, 매일 아침 출근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퇴근 후 무기력한 것도.

모두 제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이게 아니야. 너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 아니야.'

결심했습니다.


'잘하는 것이, 삶이 되도록'

늘 고민하던 이 소명을 실천하기로.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로.

그러려면 퇴직을 해야 했습니다.



생각의 전환점

하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딸이 태어난 지 8개월. 배우자는 육아휴직 중이었고, 저만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라고 말한다?

몇 번을 망설였습니다. 입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습니다.

'지금은 아니야. 조금 더 있다가.'

하지만 그 '조금 더'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나... 퇴직하고 싶어."

배우자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제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빠 대학 다닐 때의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

그 한마디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알고 있었구나. 제가 방황하고 있다는 걸. 본질을 잃고 있다는 걸.

배우자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회사보다 오빠가 더 큰 그릇이라고 생각해."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오빠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봐. 내가 어떻게든 버텨볼게."

그 순간.

저는 다시 저를 찾았습니다.

대학 때 친구들을 웃기며 행복했던 나.

이벤트를 기획하며 신나 했던 나.

새로운 걸 시도하며 살아있음을 느꼈던 나.

그 본질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본질로 돌아온 순간


2015년 11월.

저는 퇴직했습니다.

몸의 신호가 있었습니다. 오른쪽 귀를 잃으며 깨달았습니다.

딸의 탄생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배우자의 한마디가 용기가 되었습니다. "오빠 색이 사라졌다"는 말에 본질을 떠올렸습니다.

건강의 신호, 딸, 배우자.

이 세 가지가 저를 다시 저답게 만들어줬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본질을 잃고 방황했던 5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았던 시간들.

답답함을 느끼며 스트레스받았던 나날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본질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제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 마음이 다른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는 선택했습니다.

어머니의 기준과 제 본질, 둘 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안정'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으로 진짜 안정을 만드는 방법을.

지금도 오른쪽 귀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귀는 저에게 선물입니다.

"본질을 잃지 마라"는 평생의 경고음.

귀가 안 들릴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답게 살고 있나?'

'본질을 지키고 있나?'

'타인의 기준에 맞추고 있지는 않나?'

그리고 다시 중심을 잡습니다.


혹시 당신도 지금 방황하고 있나요?

본질을 잃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낯선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

괜찮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걸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나요?

주변 사람이 "너 요즘 다른 것 같아"라고 말하나요?

거울 속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나요?

그렇다면 멈춰 서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나?'

그 질문이, 당신을 다시 본질로 이끌 겁니다.

저처럼.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나?'



<나에게 묻는 질문들>

* 최근 몸이 보낸 신호가 있나요? (피곤함, 불면, 통증 등)

* "이게 아닌데"라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언제였나요?

* 지금 누구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나요? (부모, 회사, 사회, SNS 속 누군가)

*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당신도 누군가의 거울인가요?

사람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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