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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06. 2017

[D+4] 도둑시장, 나의 엉뚱한 생각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못 말리는 엉뚱한 생각 - 미니양


  리스본에서 관광객들이 한 번쯤 찾는 시장이 있다. 일명 '도둑시장'이라고 불리는 Feira da Ladra이다. 리스본 기념품부터 누가 살까 싶은 잡동사니들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파는 벼룩시장 같은 곳이다. 이 곳을 몇 번 지나며 구경을 하다보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곳에서 물건을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제 며칠동안 쓴 돈을 계산해보니, 생각보다 많이 썼더라. 리스본에 와서 기분 좋다고 너무 돈을 써댄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서 고래군이랑 오늘 하루 지출 '0'을 만들어보자 라고 정했다. 냉장고에 장 봐둔 먹을 것들이 넘쳐났기에, 오늘 하루는 냉장고를 비워도 하루를 충분히 지낼 수 있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선물로 주려고 엽서를 만들어 왔었는데, 그걸 팔아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가져온 엽서는 단 세 종류.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보였다. 뭘 팔아볼까 생각 끝에 한 달 동안 한국음식이 그리울때 먹으려고 가져온 몇 가지 식료품까지 같이 팔아보기로 했다. 고래군이나 나나 한국음식 없이도 잘 버틸 수 있으니까. 그리고 2년 동안 유용하게 잘 쓴, 터키에서 산 프렌치프레스도 가져가기로 했다.


 오전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 귀찮아하는 고래군을 잡아 끌고 시장으로 나갔다. 가지고 있던 비행기 담요를 깔고 가져온 물건을 깔았다. 혹시나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뭐라고 하면 그냥 치울 요량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좌판(?)을 깔았다. 옆에서 장사하던 아저씨한테 "OK?"라고 물어보니, "OK!"라고 대답하시길래 괜찮나보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의 엉뚱한 장사는 시작되었다.


 사실 장사라고 해봤자, 그냥 깔아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 뿐. 둘이 쪼그리고 앉아서 잡담을 나누거나, 노트를 펼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구경하거나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좀 있었으나, 그들의 지갑을 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드디어 물건 하나를 팔았다. 그것은 팔릴 거라 상상하지도 못한 프렌치프레스.


"이거 얼마야?"

"3유로."

"너희 여기 살아?"

"한 달 정도 머물기로 했어."

"난 캐나다에서 왔는데, 두 달동안 있으려고 해. 어디에서 왔어?"

"우리 한국에서 왔어."

"서울?"

"응. 서울."

"그렇구나. 안녕."

"고마워. 잘 가."


 짧은 대화가 오가고, 한국에서 여행 온 여행자가 캐나다에서 여행 온 여행자에게 터키 산 프렌치프레스를 팔았다. 그 뒤로 땡볕에 하염없이 앉아있었지만 더 이상 물건을 팔 수는 없었다. 좌판을 깔고 1시간 반만에 우리는 쿨하게 장사를 접고, 다시 골목탐험에 나섰다. 오가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물건도 팔았으니 된거지, 뭐. 


그나저나 3유로 벌었네. 이걸로 뭐하지?








#2. 이야기가 필요해- 고래군


 물건을 팔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이 엽서는 옆에 앉아있는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것들이야. 그 중에는 우리가 파티 초대장으로 사용한 것도 있어.'


 또는,


 '저 프렌치프레스는 지난 2년동안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루마니아, 스페인과 포르투갈, 독일을 거쳐 한국과 일본, 네덜란드까지 여행했던 녀석이야. 지금은 여기 리스본에 와 있지.'


 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포르투갈어는 하나도 모르고, 영어도 유창하지 못하다. 벙어리라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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