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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05. 2017

[D+3] 생일,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오늘은 소나기 - 고래군


 어제 파란 하늘이 꿈이었던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아, 이런 날에는 바깥에 나가기 싫은데…. 그러나 그녀는 날씨야 어쨌든 집에 틀어박혀있기 싫은 것처럼 보인다. 툴툴거리면서 준비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개었다. 내 귀찮음이야 어쨌든 하늘은 우리를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모양이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파란 하늘이 다시 잿빛 구름을 뒤덮이고, 이윽고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그녀는 우산을 받쳐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눈치를 보다가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왜? 기분 안 좋아졌어?”

“아까 날씨 좋아졌을 때 나왔으면 좋았잖아! 왜 이렇게 준비하는데 밍기적 거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까지 세차기 불기 시작한다. 그녀의 표정은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지는 순간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녀가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냐고?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생일’이란, 누군가가 태어난 날을 그 사람이 문화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을 기준으로 기념하는 관습을 의미한다. 이 날은 대체로 한 해에 한 번씩 찾아오는데, 적어도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들 가지고 있기도 하다. 뭐랄까… 일상적으로 다들 일 년에 한 번씩은 치러내야 하는 날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의 생일보다는 그녀의 생일이 더 중요한 날이 된 것 같다.


 어쨌든 그녀의 주변으로 무서운 기운이 가득하다. 나는 도저히 곁에 다가갈 수가 없어서, 말없이 조금 앞서 걷기만 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은 어느 골목에 들어선 직후였다.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나타난, 빗물에 반짝이는 오렌지나뭇잎.

오늘 날씨는 맑은 가운데 종종 소나기.


 그리고 그녀의 기분은 소나기 다음 맑음.





#2. 타임아웃 마켓 - 고래군


 예전에 리스본을 찾아왔을 때, 어느 오후인가 길을 걷다가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선 곳이 있었다. 그냥 어떤 건물 안으로 급히 피했는데, 들어서고 보니 시장Mercado이라는 명칭이 붙어있었더랬다. 원래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비에 감사하며 커피를 한 잔씩 마셨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면 여기에서 함께 점심을 먹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길을 나선 것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시장 건물에 도착할 즈음 다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 동쪽은 오전 시간에 시장이 열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쪽에는 푸드코트처럼 가운데 널따란 공간을 둘러싸고, 여러 종류의 식당들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 바글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 저번에 왔을 때는 사람 거의 없었는데? 여기 원래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인가?”

“그 때는 식사시간 한참 지나서라 그랬나보지 뭐.”

“그런데 우리 뭐 먹어요?”

“일단 둘러보자. 자리부터 잡아야 하나?”


 그녀의 자리 걱정이 무리도 아닌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식사를 하거나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인 것은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꽤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북서쪽 구석에 있는 ‘알렉산더 실바’라는 곳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판을 읽을 수 없는 나는 그냥 해산물 두 번째 메뉴를, 그리고 그녀는 ‘바깔라우’를 주문했다. 나중에 그녀가 알려주기로는, 내가 주문한 것이 ‘오늘의 생선’이고 그녀의 음식은 ‘커드 피쉬’라고도 부르는 이 동네 대구살 요리라고 한다.


 일단 한 마디로 이 요리들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있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생선을 굽는다고 하면, 한 마리를 그대로 구워먹는 한국식 생선구이만을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생선을 구워낸 요리에 대해 또 다른 형식을 내 머리 속에 각인하게 된 것 같다. 무슨 소리냐고? 다음에 또 먹고 싶다는 말이다. 식사를 하며 이것저것 검색해본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 가게 조금 유명한 모양이다. 뭐, 이 정도면 유명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이렇게 생선 구워서 먹어보자!”


나의 이 말에 그녀가 이렇게 답했다.


“해달라는 이야기지?”



 오늘은 3월의 어느 날.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또 누군가에는 일터이기도 한 리스본의 어느 곳에서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생일 축하해요.






#3. 생일이라는 것은 - 미니양


 생일의 의미에 대해서 고래군은 아주 무딘 편이다. 아니, 나를 만나기 전까지 챙겨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는 생일이라면 그 날 하루는 조금 특별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값비싼 생일선물을 원하는 것도, 근사한 이벤트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에 처음 생겨난 단 하루 만이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아마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없는 살림에도 생일을 챙겨주셨던 기억때문일거다. 무뚝뚝한 경상도 분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1년 중 단 하루 내 생일만큼은 기억하고, 잘 챙겨주셨다. 꼭 사오신 세 가지. 케이크와 꽃,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 하지만 성인이 되고, 멀리 떨어져 자취를 하면서부터 점점 생일에 대한 개념이 약해졌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래군은 그런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주기 위해 내 생일을 대신 챙겨주기 시작했다. 


 생일에 대해 무관심했던 그가 내 생일날이면 케이크를 찾고, 딸기를 사고, 꽃을 산다. 먼 나라 포르투갈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서툰 모습이지만 챙겨주려는 고래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밍기적 거린다고 타박을 듣고 눈치를 보며 걷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하기도 했다. 비싼 선물도, 근사한 이벤트도 없지만,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느껴져 행복한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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