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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02. 2017

[D+1] 익숙해지기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익숙한 일상 버리기- 고래군


 문득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곳이다. 낯선 곳, 그리고 이제부터 익숙해져야만 하는 곳.

전화기 버튼을 눌러 시각을 확인한다. 세 시 삼십삼 분. 3이라는 숫자가 가지런하게 나열된 화면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러고 보면 이 시각에 잠든 적은 많았지만, 푹 자고 깨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처럼 생각해본다.


‘아침 뭐 먹지?’

‘몇 시에 일어나야 하지?’


 그러고 보니 평소 사용하는 평일 알람을 안 꺼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알람을 껐다. 그리고 생각했다.


‘뭐든 먹겠지.’






#2. 새로운 일상 만들기- 고래군


 이 동네의 땅바닥은 작은 돌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별다른 목적지나 계획 없이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문득 그녀가 말을 건넸다.


“우리 오늘 뭐 해요?”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일딴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하지는 않다. 그럼 남은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도이려나? 그렇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마 ‘새로운 일상’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상이라는 것은, 아마도 ‘익숙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일단 우리! 예전 우리 숙소 있던 동네부터 찾아가보자!”

“거기? 그래! 근데 왜요?”

“예전에 리스본 왔을 때 익숙해졌던 느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건너편 집 할머니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곳은 우리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실 이번에 올 때 다시 한 번 머물고 싶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숙소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머물지 못했다. 어쨌든 이 공간에 있으려니, 방금 전보다 이 도시가 훨씬 익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예전 기억이 어제의 기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주 예전, 그녀가 두 번째로 리스본에 혼자 왔을 때 식사했던 ‘닭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녀는 항상 ‘닭집’, 또는 ‘치킨집’이라는 명칭으로 이 가게를 회상했다.) 사실 저번에 함께 왔을 때 그 앞을 지나치기만 하면서 우리가 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다음에 오게 되면 여기서 밥 먹자’고 말이다.


 일단 빈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리가 비면, 곧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서울과 비교하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음식이 나온다. 그렇지만 모두들 별로 괘념치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여행객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 이 동네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이 사람들 점심시간이 꽤 긴 모양이다. 맥주나 와인을 홀짝이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맥주 한 잔씩, 그리고 구운 닭과 감자튀김, 쌀요리를 한 접시에 담은 메뉴를 선택했다. 맥주는 시원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간단한 포르투갈 말이라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여기서 한동안 살아야 하니 말이다.







#3. 여행책에 있을 법한 맛집 이야기- 미니양


 2011년 두 번째 리스본 여행 때 무작정 걷다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식당 앞을 지나가게 됐다. 마침 배도 고프고, 무슨 음식이길래 손님이 이렇게 많은걸까 하는 생각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지금도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못하지만, 그 때는 닭고기, 소고기 라는 단어조차 아예 몰랐던 때라 메뉴판을 보는 나는 까막눈 신세였다. 종업원도 영어는 못하는지라, 그냥 공통으로 아는 단어였던 치킨으로 합의(?)를 보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그 식당에서 그릴에 구운 치킨이 가장 유명한 메뉴라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가서 알게 되었다. 식당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치킨을 먹고 있었다.)


 내가 먹은 구운 치킨 중에서 TOP3 안에 드는 치킨이라 다음 번에 고래군과 한 번 꼭 가보리라 생각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그래도 망설임없이 들어가 복잡한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닭고기, 소고기 정도는 알아볼 수 있으니, 훨씬 수월하게 주문을 했다. 물론 맥주도 함께. 메뉴가 나오길 한참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우리나라였다면 점심시간에 쫓겨 빨리 먹고 서둘러 일어서기 바빴을텐데, 이 곳 사람들 이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식사 후에는 디저트에 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신기했던 식당풍경은 식사 후에 카드 결제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종업원이 휴대용 카드리더기를 손님에게 갖다 주었다. 그러자, 리더기를 받은 손님들이 그 리더기를 돌려가며, 자기가 먹은 밥값을 스스로 입력하고, 카드를 긁고, 영수증까지 챙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이 사람들 오랜 단골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다.


 정말 많은 손님들이 들고나는 점심시간에 정신없을 법도 한데, 일을 능숙하게 해냈던 홀매니저 언니의 일 솜씨에 감동하며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하고 나왔다. 왠지 리스본의 한복판에 제대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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