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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04. 2017

[D+2] 골목 탐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익숙하다는 착각- 고래군


 오늘도 새벽 세 시 반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의 스마트폰이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몸서리쳤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놀라서 깨고 보니, 정작 그녀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고 숙면 중이다. 아마 그녀가 서울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가 연락한 모양이다. 리스본과 서울의 시차가 아홉 시간이랬나? 그럼 새벽 세 시 반이니까… 서울은 낮 열두 시 반 정도 되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익숙하다’는 착각을 하기 마련인 것 같다. 당연히 나와 같은 시간, 나와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저 사람은, ‘나처럼’ 살고 있을 거라는 착각 말이다. 나부터가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고 있으니, 뭐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있겠나 싶기도 하다.

다시 되새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고. 다른 삶을 살아서, 잠시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게 된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결국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결코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게 되어버리는, 새벽 세 시 반은 그런 시각이다.






#2. 다시 익숙하다는 착각- 고래군


 아침식사를 하고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색이 하늘색이었기 때문이다. 그 ‘하늘색’ 말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바로 그 하늘색. 그러고 보면 내가 반했던 리스본은 바로 저 하늘에 뜬 눈부신 햇살 아래 그 도시였다는 사실이 이제야 떠올랐다. 예전 찾아왔을 때 들었던 생각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햇살’이라는 표현이었다는 기억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요?”


 햇살 아래 그녀에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이다. 무작정 나왔는데, 그런데 딱히 갈 곳은 없다. 어쩐지 좀 어리석은 질문인 것도 같다. 그리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냥 걷지 뭐.”


 나의 질문은 확실히 어리석었다. 그녀 말처럼 그냥 나온 거니까, 그냥 걷기만 해도 충분한 것인데…. 그나저나 이 근방은 워낙 익숙해서, 딱히 뭐 새로운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오빠. 저기! 저 골목으로 가보자 우리!”


 그리고 이 아름다운 도시는 나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처음 만나는 풍경들을 연이어 보여주었다. 지도도 필요 없을 정도로 이제 이 동네는 익숙하다고 믿었던 나의 생각을, 착각이라고 넌지시 알려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3. 그냥 - 미니양


 고래군과 리스본에서 한 달을 살기로 했을 때 사실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1%도 없었다. 그저 여유롭고 싶었고, 그저 내 두 발로 구석구석 보고 싶었다. 팍팍한 일상과 딱 9시간의 시차만큼만 떨어져 있고 싶었기 때문에, 리스본에 와서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맑은 하늘 아래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3번이나 왔었던 리스본이지만, 걷다보니 내가 알던 리스본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들을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팍팍한 일상일지 모를 이 공간에, 나는 또 다른 경험을 위해 떠나온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걷다 지치면 그냥 잠시 쉬면 된다. 우리네 인생도, 여행도.


“오빠. 우리 이제 다리 아픈데, 커피나 한 잔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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